top of page

issue 02

2024.AUTUMN

진동: 초문화적 만남의 방식으로서

Vibration as a mode of transcultural encounter

왓와이 아트(WHATWHY ART, 서울)와 

솔리스텐앙상블 칼라이도스코프(Solistenensemble Kaleidoskop, 베를린)의 

공동 예술 연구 프로젝트 ‘떨림 Trembling’에 관한 생각

글 토마스 샤우프(Thomas Schaupp)

   떨림, 흔들림, 진동, 울림 –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반드시 긍정적인 경험과 연관 짓지 않는 특성들이다. 땅이 떨리고, 어떤 곳에서는 지면이 벌어지거나 충돌하여 우리의 발 밑을 흔들어놓는다. 우리가 추위를 느낄 때 몸이 떨리고, 등골이 오싹해질 때 몸이 떨린다. 전동 칫솔을 사용할 때 손이 진동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무언가가 균형을 잃고, 흐트러졌음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느끼는데 바로 그것이 우리를 균형에서 벗어나게 하고,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식민주의 담론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 중 한 명인 크레올 철학자 에두아르 글리상Édouard Glissant에게 ‘떨림’이라는 용어는 특히 적합했다. 이 용어는 그가 전적으로 반대했던 문화적 균질화와 세계화의 물결에 대해, 문자 그대로 신체적으로 감지될 수 있는 충격적인 반대 운동을 나타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글리상의 ‘떨림’은 서울에서 전통, 현대, 초문화적 음악을 탐구하는 앙상블인 왓와이 아트(WHATWHY ART)와, 베를린에서 실험 음악극의 새로운 형태 개발에 헌신하는 솔리스텐앙상블 칼라이도스코프(Solistenensemble Kaleidoskop) 간 진행 중인 음악 연구 프로젝트의 풍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2023년 5월, 두 앙상블은 처음으로 베를린에서 만나, 비브라토라는 음악적 모티프를 중심으로 한 음악-신체적 만남을 통해 각자의 사고와 작업 방식을 새롭게 열어가려 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질문은 ‘떨림’이라는 글리상의 실천이 소리와 몸에 어느 정도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이다.

1_edited.jpg

   글리상의 '떨림' 개념과 초문화적 실천의 토대

 

   글리상은 그의 유명한 저서 『관계의 시학La poétique de la relation』에서 정체된 것으로 여겨지는 세계화를 반대하며, 그만의 지역화와 세계성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불투명하고 다양한 혼돈으로 가득한,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있는 세계를 뜻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그의 관점에서,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침묵 속에서 자기 안으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에 맞서면서 타자 및 외부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떨림’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체로부터의 적극적인 탈출이 왓와이 아트 앙상블과 칼라이도스코프를 정의하고 연결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두 앙상블은 각자의 창립 이후로, 끊임없이 저항을 받으면서도 음악과 관련된 전통적 사고와 작업 방식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문화적 한계를 넘어서는 다른 예술적 길을 탐구해 왔다.

   비브라토와 음악적 떨림: 동서양의 만남

 

   지난 몇십 년간 음악 산업 전체가 상당히 변화해 온 것은 사실이다. 세계화와 지역화의 경향을 모두 식별할 수 있다. ‘스포티파이’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세계화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여러 반대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특히 '고전'이나 '전통'이라는 딱지가 붙은 음악에서는 여전히 정통에서 벗어나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이다. 전통과 관습이 강하게 유지되는 예술 장르는 거의 없으며,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에서부터 그것이 표현되고 받아들여지는 방식까지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음악 수용에 대한 서구적 이해가 여전히 지배적인 것으로 보이는 글로벌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1_edited.jpg
1_edited.jpg

   왓와이 아트와 칼라이도스코프가 글리상의 ‘떨림’ 개념을 채택하고, 이를 비브라토라는 음악적 모티프를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연구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더욱 일관된 움직임처럼 보인다. 비브라토는 말하자면 음악적 형태의 떨림으로, 한국과 서양의 고전 음악에서 특히 현악기와 관악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브라토는 보통 연주자가 현 위에서 손가락을 앞뒤로 움직여 주기적인 음의 변동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약간의 음의 떨림은 표현력을 높이며, 진동이 없는 음과 대조적으로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서양의 비브라토 외에도 한국 음악에서 사용되는 비브라토 유형은 훨씬 더 다양한 범위를 가지며 때로는 두 음 사이를 오가기도 한다. 이는 악기의 구조, 재료, 연주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비브라토를 주제로 선택한 것은 논란이 없는 선택이 아니다. 특히 서양 고전 음악에서 비브라토는 끊임없이 논의된다. 일부는 그것을 구시대적이라며 거부하고, 또 다른 일부는 사용을 고집한다. 심지어 칼라이도스코프 앙상블 내에서도 다양한 학파와 사고방식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기에 글리상의 개념을 적용해 보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일이다. 떨림이 아주 다른 문화적 체계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일종의 접점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말이다.

   비브라토가 각각의 맥락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이해와 더불어, 서로 매우 다른 악기들, 그 성질, 취급 방식, 연주 기술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접근 방식이 된다. 악기의 형태와 재료는 일부 경우에서 크게 다르며, 그에 따라 소리 또한 달라진다. 자신의 악기를 미지의 비브라토를 흉내낼 수 있을 만큼 몰아붙이는 것이 가능할까? 다른 악기는 어떻게 연주되며 어떤 음역을 만들어내는가? 또한, 떨림이라는 개념에서 물리적 힘의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떨리는 사고'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떨림과 진동은 악기뿐 아니라 신체에서도 느낄 수 있는 마찰의 과정이 되어, 때로는 쾌적하게, 때로는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신체와 공간도 떨리고 진동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함께하고, 어디에서 거리를 유지하는가? 무엇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함께 진동하는 것이 차이에 대한 소리적, 신체적 포용을 유발하는가?

   이러한 질문들과 여러 다른 질문들을 함께 제기함으로써, 왓와이 아트와 칼라이도스코프는 동서양 음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창출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을 시험하고 있다. 동시에, 서로의 음악적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에 헌신하면서도 차이를 기리는 초문화적 실천의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지나치게 좁게 정의된 자기 정체성의 이해를 넘어서는 시도이기도 하다.

글리상은 세계성 개념을 통해 모든 인간, 모든 지역, 모든 맥락 속에는 언제나 알 수 없는 무언가, 즉 불투명성이 존재하며, 이는 우리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한다고 강조했다.

   구별하고 적응하며 확실성을 얻어 이를 공유하려는 욕구가 점점 더 강해지는 시대에, 이러한 불투명성은 방어하고 수용해야 할 가치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구 프로젝트 ‘Trembling’은 중요한 시도이자 반드시 더 깊이 탐구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프로젝트다.

1_edited.jpg

사진

1-4. 2023.05-06. Trembling 리서치, 워크숍, c. Christina Voigt

5. 2023.09-10. Trembling <ailleurs (다른 곳에서)> 공연, c. Györgyi Kovács

6. 2024.09. Trembling <sound of differnce> 공연, artwork @formundkonzept

thomas.jpg

​글. 토마스 샤우프Thomas Schaupp

무용 드라마투르그, 큐레이터. 베를린에서 연극학 & 예술사 학사를 취득했다. 2010년, 학생시절 베를린과 파리의 사샤 발츠 & 게스트(Sasha Waltz & Guests), 부쿠레슈티 국립무용센터(National Center for Dance in Bucharest)에서 인턴을 경험했다. 이후 무용학 석사과정을 중단하고 드라마투르그와 큐레이터로서의 프리랜서 활동에 전념하며 유럽 및 여러 나라의 안무가, 기관들과 함께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