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2024/25.WINTER
프리뮤직의 거장 강태환과의 대화
: 즉흥 속에 담긴 예술과 철학
인터뷰어. 유홍

1. 한국즉흥음악축제
강태환(1944~ )은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프리 재즈 색소폰 연주자다. 초등학교 시절 클라리넷을 시작으로 음악에 입문하였으며, 이후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클래식을 공부하다가 알토 색소폰으로 전향했다. 1968년, 국내 최연소로 재즈 밴드의 리더가 되었고, 1978년에는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 트럼펫 연주자 최선배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프리 재즈 그룹인 '강태환 트리오'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프리뮤직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연주는 전통적인 재즈의 틀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네드 로덴버그, 영국의 에번 파카와 함께 세계 3대 프리뮤직 색소폰 연주자로 꼽히며,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강태환은 독특한 연주 자세로도 유명하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색소폰을 연주하며, 순환 호흡 기법을 통해 몇 분 동안이지만 쉬지 않고 같은 음을 내거나, 색소폰으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의 음악적 여정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프랑스의 재즈 전문지 '노트'에서는 그를 ‘프리 재즈의 대가’라고 극찬했다. 또한, 2013년에는 한국대중음악상 재즈 & 크로스오버 최우수 연주상, 2024년 특별 공로상을 수상하며, 그의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현재까지도 강태환은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며 ‘프리뮤직’의 거장으로서 후배 음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인터뷰는 2024년 12월 10일, 약 100분간 이루어진 강태환과 대금 연주가 유홍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강태환의 음악 철학과 즉흥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담긴 대화를 통해 보다 편안하게 음악을 받아들이고 음악과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강태환의 음악 여정

2. 한국즉흥음악축제
유홍: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강태환: 어린 시절 학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제가 몰두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음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클라리넷 연주로 음악을 시작했고 클래식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재즈처럼 조금 더 즉흥적이고 창의적인 음악에 끌리게 되었어요. 미군 부대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으면서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이 제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음악은 저에게 단순한 연주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자신을 표현하고 탐구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유홍: 즉흥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강태환: 즉흥 음악은 재즈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재즈의 본질은 독창성과 즉흥성에 있다고 생각해요. 연주자가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과 훈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선율을 만들어내고 이를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처음엔 저도 어렵다고 느꼈지만, 끊임없이 연습하고 도전하면서 그 과정에서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즉흥음악은 단순히 자유롭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상태에서 나오는 독창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즉흥 음악을 통해 음악가로서 제 정체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제게 큰 만족감을 줍니다.
유홍: '프리뮤직'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신 배경은 무엇인가요? 프리뮤직을 어떻게 정의하실 수 있을까요?
강태환: ‘프리뮤직’이라는 용어는 1978년에 공간 사랑이라는 공연장에서 연주를 시작하며 처음 사용했습니다. 당시 서양에서는 ‘프리 재즈’라는 이름으로 독창적이고 즉흥적인 음악이 발전하고 있었지만, 저는 재즈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음악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재즈적 기반은 유지하되, 특정 장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을 ‘프리뮤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프리뮤직은 모던 발레가 전통 발레를 기반으로 발전했듯, 재즈의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표현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저에게 프리뮤직은 단순히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 아니라 제 개성과 창의성을 담아내는 창작의 과정입니다. 재즈, 현대음악, 심지어 민속음악까지 다양한 영향들을 흡수하며 저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프리뮤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태환의 음악 철학

3. 게토얼라이브
유홍: 좋은 즉흥 음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강태환: 좋은 즉흥 음악은 연주자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연주하면서 행복하고, 그 감정이 담긴 음악이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때 비로소 좋은 즉흥 음악이 완성됩니다. 또한, 즉흥 음악은 순간의 예술입니다. 그 순간 떠오른 영감으로 표현된 음악이 가장 진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명작이 될 수도 있고 그저 지나가는 소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 순간의 진정성과 몰입입니다.
유홍: 선생님의 음악적 변화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계시는 지도요.
강태환: 제 음악적 여정은 항상 현재를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과거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은 어떤 면에서 과거보다 더 간결하고 본질적인 음악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복잡한 기교보다는 음악의 본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매일 새로워지려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유홍: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자유 즉흥 음악을 연습하시나요?
강태환: 즉흥 음악을 위한 연습은 꾸준한 준비와 자신만의 패턴을 만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습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자꾸 만들어보고,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입니다. 때로는 영감이 없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손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준비해야 합니다. 영감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준비된 사람에게만 그 빛을 보여줍니다. 작은 멜로디라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반복과 변주를 통해 점차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홍: 선생님께서 음악을 하시며 행복함을 느끼시는 순간이 언제인가요?
강태환: 음악을 하며 가장 행복할 때는 제 소리가 온전히 나올 때입니다. 그것이 관객에게 전달되고, 그들도 그 순간에 몰입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희열을 느낍니다. 영감은 종종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옵니다. 차분하게 집중하고, 내면에 몰입해 있을 때. 또는 아주 일상적인 순간에도 영감이 스치고 지나가곤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영감을 놓치지 않고 바로 음악으로 풀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유홍: 지금까지 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강태환: 제가 공연을 해온 세월이 길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음향이 정말 뛰어났던 공간에서의 연주입니다. 음향이 좋으면 연주자가 더욱 몰입할 수 있고, 음악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죠. 특히 마이크 없이 자연 음향이 잘 전달되는 공간에서는 제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어 연주자로서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은 흔치 않기에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집중하려고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지금 이 자리에서의 몰입이니까요.

4. 게토얼라이브
음악가로서 음악가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유홍: 국악 연주자가 즉흥 음악에 도전할 때 어떤 경험과 조언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강태환: 국악 연주자들과 즉흥 음악을 함께한 경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국악 악기의 특성상 즉흥 음악에서 풀어내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음역이나 표현의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그 자체가 매력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국악의 전통적인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표현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즉흥 음악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음악적 대화를 이어가는 데 핵심이 있다고 봅니다.
유홍: 즉흥 음악가를 꿈꾸는 예술가들이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면 좋을까요?
강태환: 즉흥 음악을 하고자 한다면,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남을 모방하기보다는 자신의 독창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음악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또한, 끊임없이 준비하고 연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영감에만 의지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준비된 패턴과 표현 방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즉흥 음악의 핵심은 진실성과 순간의 몰입입니다. 그 진실성이 관객에게도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유홍: 후배 음악가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태환: 음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철학을 담아내는 예술입니다. 후배 음악가들에게는 항상 꿈과 열정을 가지고 음악을 대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가세요. 그리고 혼자만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소통하며 서로의 음악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음악은 함께 나눌 때 그 가치가 더욱 커집니다.
유홍: 일반 관객도 즐길 수 있는 자유 즉흥 음악의 감상 포인트도 알려주세요.
강태환: 자유 즉흥 음악은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번 들어보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즉흥 음악은 정해진 형식이 없으므로, 연주자의 감정과 순간의 영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들으며 연주자가 전하려는 감정을 느껴보세요. 그러면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강태환: 저는 지금도 새로운 곡을 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며 꾸준히 음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대단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매일 조금씩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제 음악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 음악이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한국즉흥음악축제
사진 제공.
1, 2, 5 유홍 / 3,4 게토얼라이브

인터뷰어. 유홍
대금연주가. AsianArt Ensemble, Ensemble Extakte의 멤버(베를린), 왓와이 아트(WHATWHY ART) 음악감독 그리고 아우프윈드(Aufwind)의 예술감독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접근을 통해 한국음악의 가치를 새롭게 제고하며 예술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2023, 2024년 한국즉흥음악축제 예술감독, 2024년 국악X클래식 통합형 창작음악 아카데미 <내일을 위한 음악> 예술감독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