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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

2025.06

서용석의 유산 Ⅱ

: 서용석의 대금산조와 나의 작품 오늘,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Vol.1)

글. 세바스티안 클라렌(Sebastian Claren)

이 글은 2021년 12월 17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 '동서양, 서양과 동양의 만남'에서 세바스티안 클라렌이 발표한 강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6. 채보/전사

산조를 서양 기보법으로 채보한 대부분의 출판 사례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 식을 취한다. 기본 음높이와 음길이만 기입하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추가적인 기호(記號)에 맡기거나 아예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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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서용석 대금 산조, 시작 부분, 서양 악보로 표준 표기

산조를 서양 기보법으로 채보한 대부분의 출판 사례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 식을 취한다. 기본 음높이와 음길이만 기입하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추가적인 기호(記號)에 맡기거나 아예 생략한다(그림 3). 그 이유는 어쩌면 채보 자들이, 산조를 서양 기보법으로 나 타낼 때에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고 느껴진다는 사실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정간보 체계에 가까운 기보를 고수하려 하기 때문일 수 있다. 국악인들은 수년 동 안 이 악보로 작업해 왔기 때문에, 이 채보 방식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분명히 효과가 있다 - 내가 추측하기에, 산조는 항상 외워서 연주하기 때문에, 채보된 악보는 암기를 위한 보조 수 단으로만 사용될 뿐이고, 더욱 야심적인 몇 가지 사례를 제외하면, 음악을 충실하게 재현한 것으로서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러한 기보가 산조 음악의 관념을 왜곡한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음악가들이 이렇게 단순화된 기보에 의존할 때에는, 아무리 사소하나마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 한다.

작곡가의 말로서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유홍 선생님과 함께 대금을 공부하는 동 안 이 악기를 위한 곡을 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음악 에 대해 더 배우고 싶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유홍 선생님이 나에게 자신을 위한 곡을 써 달라고 요청할 것은 거의 정해진 일이었고, 내가 ‘아니요’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결국 나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것이다.

작곡가로서 이 악기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을 때, 내가 서용석류 대금산조의 소재로 작업 하게 될 것이라는 점과 내가 그 음악에서 가장 매혹적으로 느꼈던 세부 사항들을 부각시키려 할 것이라는 점이 곧 분명해졌다. 이러한 세부 사항들은 원곡을 상당히 잘 알고 있다 하더라 도, 연주를 들을 때에는 종종 따라가기 어려운 것들이다.

나는 대금 수업에서 배운 모든 세부 사항을 포함하기 위해, 서용석 대금산조를 서양 악보로 새로 전사하여 이 곡을 쓸 준비를 했다. 이 세부 사항들은 관습적인 채보처럼 장식 기호로 적 지 않고, 리듬과 음고 구조가 음악의 다른 요소들과 동일한 기보상의 층위에 놓이도록 드러내 어 풀어 적을 것이었다. 일부 한국 연주자들이 이러한 기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이러한 기보는 지나치게 복잡해 보이고, 장식음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정확히 지시하는 기보에 제약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작곡가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방식으로 음악을 전사하는 것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 째, 이는 성공적인 연주에 필수적인 모든 세부 사항을 갖추어, 음악이 실제로 들리는 그대로 를 재현한다. 그리고 둘째로, 이것은 작곡가로서 소재를 실제적으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 법이다. 그것을 풀어 적어야만 비로소 변형하고 발전시킬 수 있으며, 가변적인 재료로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하나의 양식을 인용하는 데 그칠 뿐이다.

나는 국악[에서] 가장 분명하고 잘 알려진 특징 가운데 단 두 가지, 즉 꺾는 소리와 요성에 대 해 언급하고, 나의 전사 악보에서 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설명하겠다. 대금에서 이 둘은 매 우 특별한 성격을 갖는다: 위나 아래로 꺾는 방식에 따라 동일한 음높이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운지와 소리 성격으로 연주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낮은 임(林)에서 높은 중(仲)으로 이어지 는 진행은 서로 다른 색채를 지닌 동일한 음높이를 만들어 내며, 이는 대금산조에서 상당히 흔한 악식 제스처이다. 정간보에서 한자(漢字)는 음높이가 아니라 운지법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 음악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서양 악보에서 는 운지가 아닌 음높이만 제시된다. 이는 작곡가가 연주 기법과 음색까지 제어하고자 할 때, 운지법에 관한 추가 정보를 반드시 제공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이 나의 전사 작업과 이후의 작품에서 서양 기보법에 한국식 율명으로 된 운지 정보를 보완하기로 결정한 이유이다.

국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요성과 서양의 비브라토가 매우 다른 두 현상이 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서양 음악에서 비브라토는 주로 색채로 간주지만, 국악에서 요성은 음 악의 구조적 틀의 일부이다; 따라서 연주자는 그것의 용법과 성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으 며, 반드시 곡의 요구사항에 따라 적용하여야 한다. 대금에서 훌륭한 요성을 내는 것은 어려 우며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다른 한국 전통 악기들과 유사하지만 대금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은, 왼쪽 어깨를 축으로 악기를 회전시켜 완전한 요성 동작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요성의 속도와 너비를 매우 정밀하게 규정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서용석류 대금산 조를 연습할 때, 동일한 음에서는 항상 같은 횟수를 흔들어 요성을 연주하는 뚜렷한 경향이 있음을 곧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사실상 요성을 고정된 리듬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이 에 대해 유홍 선생님에게 질문었을 때, 그는 일부 선생님들은 학생에게 각 음에 따른 요성 횟 수를 일일이 말해주기도 하지만, 자신은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음표 하나당 요성 동작의 횟수는 서용석 대금 산조 연주에서 정말로 본질적이라는 것이, 나에 게 매우 분명해졌다. 따라서 서양 기보법으로 된 전사 악보가 한국 요성의 본래적인 관념에 올바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동작 속도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다. 연주자가 요성의 속도에 대해 어떠한 자연스러운 감각에도 의존할 수 없는 새로운 곡에서 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서용석 본인의 연주에서는 이 요소가 한층 더 두드러진 다. 그는 넓은 요성을 매우 자주 사용하여 사실상 본음(base pitch)을 단절시키고, 그것이 마 치 반복음처럼 들리게 만들기 때문이다."1)

1)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나는 서용석의 분절된 요성을 항상 안톤 베베른의 12음 음악에 나오 는 수많은 반복음과 연상짓고는 하였다. 물론 표면적으로 두 음악가의 환경과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다르지만, 단일 음높이에 내부 구조를 부여함으로써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유사한 욕구가 있다고 항상 느껴왔다. 보다 일반적인 측면에서 덧붙이자면, 한국의 산조가 본질적으로 20세기 음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산조는 서양 현대음악과 매우 다른 문화에 속해 있으며, 한쪽이 다른 한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쪽 모두 20세기의 정치적·사회적 격 변 속에서 발전했으며, 비록 서로 매우 다른 음악적 환경 속에 있었다 할지라도, 주변 사건들에 대해 유사한 감수성으로 반응했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비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7. 정간보 對 서양 기보

내가 전사한 서용석류 대금 산조의 가장 첫 페이지 에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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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서용석 대금 산조, 시작 부분, 세바스티안 클라렌 채보

이 방식이 표준적인 국악 채보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음악의 모든 세부 사항이 정밀하게 기보되어 있으며, 심지어 연주 시 흔히 간과될 수 있는 작은 특징들조차 그 자체의 권리를 가진 것으로 기보에 포함되었다. 일부 리듬은 이런 종류의 음악치고는 지나치게 복잡해 보일 수도 있으나, 이것이 바로 내가 그 리듬들이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는지 이해하는 바이다. 다이내믹 표시는 이 음악의 표현에서 필수적이라고 느낀 곳에만 사용했다. 이미 설명했듯이, 오선 위의 한글 율명은 연주자에게 해당 음높이를 어떻게 운지해야 하는지 명확히 이해하게 해주며, 독자에게 는 관련 연주 기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전사 악보는 서용석 산조에서 일어나 고 있는 일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으며, 대금을 연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음악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 할 때 아마도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음악을 이렇게 기보했을 때, 그 모습이 20세기 서양 음악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도 상당히 흥 미롭다.

그러나 이것이 이 음악에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기보법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연주자가 이러한 악보를 보고 연주하면서 음악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낼 방법을 찾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 음악이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하기 때 문이다. 나의 전사조차 실제로 연주되는 것과, 악보가 과도하게 부담스러워 지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기보할 수 있는 것 사이의 타협일 뿐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미묘한 차이들이 단지 음악 연주의 속성[일 뿐], 곡 자체의 본질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험상, 어 느 연주자든 특정 구절을 연주할 때마다 언제나 동일한 방식, 즉 동일한 다이내믹 전개, 동일 한 음색, 그리고 당연히 리듬의 동일한 점층법으로 연주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이 음악은 제 자가 스승의 연주를 가능한 한 똑같이 모방하도록 가르치며, 설령 제자가 그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스승은 아주 미세한 이탈조차 일일이 바로잡아 주곤 한다. 이 기보법의 문제는 그 것이 절대적으로 정밀하다는 인상을 주어 연주자가 이를 가능한 한 똑같이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기보조차 음악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근사 치로 표현한 것일 뿐이며,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연주한다면 그 연주는 오히려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나의 전사 악보는 이 음악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데에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지만, 연주자 입장 에서는 오히려 단순화된 서양 기보가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것은 연주자가 스승으로부 터 배우는 내용에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간보가 단연코 최선의 선택이 라 할 수 있는데, 정간보는 이 음악의 형태를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연주자가 배우 있는 바를 따를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승의 지침이 없는 상황이라 면, 서양 기보법으로 된 나의 전사 악보가 정간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세부 사항들을 보완해 줄 것이다.

8. 오늘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Vol.1)

물론 서용석류 대금산조를 그 자체로 독자적인 전사 악보로 만드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 이 준비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것은 결국 나의 작품에 필요한 소재를 마련하기 위 한 것일 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의 견해로는, 국악의 실제에서 사용되는 것을 단순히 있 는 그대로의 소재로 가져오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나에게 소재란, 새로운 곡의 요구에 따라 궁극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고 변형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 의 경우, 이것은 언제나, 내가 활용하려는 음악을 정밀하게 전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리듬, 음높이, 혹은 제스처 등 소재가 지닌 모든 기본적 특성 을 손에 넣어 작업할 수 있게 되고, 보다 일반적인 측면에서는, 내가 다루는 소재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도 소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비 과정을 거쳐 마침내 악곡에 착수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나는 일찍부터 진양 조에서 취한 재료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진양조는 서양식 관점에서 산조의 제1악장으로 이 해할 수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곡의 전반부를 결속시킨 뒤 점차 빨라지는 세 가지 다른 장단 에 자리를 내주며 산조의 제2, 3, 4장을 규정하는 느린 장단 주기이다. 당시 나는 이 음악에 서 기술적으로 미묘한 것들에 사로잡혀 있었고, 나의 곡에서 그것들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보 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원본 음악에서 한 번씩만 나타나고, 종종 너무 빠르고 순 식간에 연주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인지하고 즐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 따라서 나는 선택한 구절들의 본질을 끌어내기 위해, 때로는 작은 단위에, 때로는 더 큰 단위에 집중하여 이를 다양한 형태로 거듭 반복하는 정반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 졌다.

이 곡의 시작 부분은 이에 대한 아주 좋은 예이다. 나는 이미 전사 악보를 준비하는 동안, 다 소 비범한 어떤 한 가지 제스처의 변이들로 긴 연쇄를 이루어 곡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상태였 다. 이것은 높은 중(仲)에서 태(太)까지 이중 아치를 그리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진양조의 상당 히 앞에 등장하는 이 대목은 높은 중을 처음 짚는 시점으로, 내게는 언제나 일종의 울부짖음 처럼 들린다.2) 이러한 감정적 내용 외에도, 이 시작부의 목적은 높은 중(仲)이라는 단 하나의 음을 꺾는(bending) 동작으로부터 하나의 긴 단락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서용석 산조에 서 이 제스처를 마무리하는 '태(太)'로의 하행 움직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작품의 초반 3분은 오직 이 한 음의 꺾임 변주들일 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대금에서 높은 중 (仲)은 모든 지공을 열어 연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곡의 초반 3분은 기본적으로 손가락을 쓰지 않는 플루트로 연주되며, 단지 왼쪽 어깨 위에서 대금을 앞뒤로 굴리기만 하여 소리를 낸다.

나는 이 소재를 수없이 연습하고 또 직접 나만의 전사 악보를 준비했기 때문에, 이 소재를 매 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곡의 전개는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전개의 초점은 언제나 원 곡 소재에서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확대해 가는 데 있었으며, 따라서 동일한 소재를 서  로 다른 버전으로 거듭해서 다시금 살펴보는 반복과 변주가 이 곡의 기술적 토대로 남았다. 이 구절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고유한 성격을 띠게 되었고, 원본 산조의 관념을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시켰다. 그 분위기는 한편으로는 강박적이고, 다른 한 편 으로는 최면적이며, 청자는 악기 고유의 순수한 소리 속으로 빠져든다.

이 구절들 가운데 일부는 연주자가 신체적 긴장감을 매우 오랜 시간 높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 에 연주자에게 상당한 무리를 요구한다. 나는 청중이 이런 종류의 노력을 매우 잘 인지한다고 생각하며, 이는 곡 전체의 극적 구성을 강화시킨다. 어떤 구절은 연주자 측에서 일정 부분 통 제를 상실하도록 기입되어 있는데, 예컨대 빠른 구절을 너무 자주 반복하여 어느 지점에서 결 국 소리가 깨질 수밖에 없게 하거나, 완전히 통제가 불가능한 여러 유형의 오버블로잉을 동일 한 소재에 적용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통제 상실과 전통적인 대금 소리의 파열로 인해, 이 구 절들에서는 날것 그대로의 폭력성과 위험의 감각까지 있을 수 있다.

이 곡이 원본 산조의 소재를 변형해 가면서 매우 기묘한 효과가 발생한다. 어느 지점에 이르 면, 소재의 새로운 버전들이 원곡의 버전 위에 어떻게든 덧입혀 적힌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단지 새로운 버전들이 너무 많이 반복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선택과 반복을 거치며 그 것들이 원곡의 소재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실체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이것이 나 의 의도였다. 이 효과는 힙합 트랙의 샘플링과 매우 유사한데, 여기에서 샘플링으로 선택된 선율은 저항할 수 없는 귀벌레로 변하는 반면, 그 선율의 나머지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의식의 배경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들어간다. 이와 유사하게, 요즘 내가 서용석 대금산조를 들 을 때면, 예의 그 동일한 소재가 종종 나의 작품에서 변형된 형태 그대로 떠오르고는 하지만, 그 반대의 효과는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것이 분해되고, 세부에서 세부로 확대해 들어가다가 곡의 약 3분의 2 지점에 이르면, 진 양조의 첫 줄이 온전하게 인용되어 세 차례 반복된다.

그림6. 세바스티안 클라렌, 오늘,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Vol. 1) (2016), 16쪽, 서용석대금 산조의 시작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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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나의 곡 전체의 맥락에 서 볼 때, 해당 소재는 이 지점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드러나며 – 이는 변화 없이 세 번 반복 되는 상대적으로 긴 유일한 구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서용석 대금산조 연주의 시작 부분과 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음악의 모든 세부 사항이 복잡한 서양 기 보 체계로 전사되어 있을 때에, 연주자는 그 악보를 정확히 따르려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좀 더 경직되고, 그 결과 해당 구절의 표현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말하자면 정확하게 이것이 바 로 내가 달성하고자 원했던 것이었다. 나는 연주자가 의식적으로 애써서 [해당 구절이] 서용석 대금 산조 버전을 인용한 것처럼 들리게 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잠재의식적인 차원 에 영향을 주어 연주가 약간은 억제된 듯 소리 나기를 바랐다. 다만 이러한 느낌이 겉으로 너 무 드러나지는 않아야 했다. 나에게 이것은 물론 원곡 소재에 대한 공공연한 참조였지만, 동 시에 나는 이를 한때 산조였던 것에 대한 일종의 사진, 혹은 이제는 변화 없이 거듭 반복될 수 있는 화석화된 버전으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곡의 제목을 정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이 곡의 일부만 내 것이고 나머 지는 서용석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개인적이거나 직접적으로 들리는 제목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빌리 우즈의 힙합 앨범 Today, I Wrote Nothing3)을  듣게 되었고, 이 제목이 내 곡의 구상을 매우 잘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이 곡은 나의 작품이며,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지만, 동시에 곡 속의 단 하나의 음표도 사실 내 것은 아니다. 이 곡 속의 모든 것이 예외 없이 서용석 대금산조와 관련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이 곡에서 산조의 첫 부분인 진양조만 사용했기 때문에, 제목에 ‘(Vol. 1)’을 덧붙이고, 이 곡을 Today, I Wrote Nothing (Vol. 1)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는 언젠가 더 많은 후속편이 추가될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빌리 우즈의 제목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러시아의 부조리 작가 다닐 하름스의 노트에서 인용한 것이었다.4) 물론 빌리 우즈와 다닐 하름스는 정 말로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나의 곡의 경우 이 제목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기쁘게 받아들인 아이러니이다. 2016년 11월 16일 베를린 콘체 르트하우스 베르너-오토 홀에서 열린 초연 후, 독일의 한 주요 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치는 지인이 “이건 이미 고전이야!”라고 평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곡을 쓰기에 앞서 행한 모든 고찰과 관찰이 결국 작곡가로서 전통적인 소재로 작업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발 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에 꽤 만족스러웠다.

2) 흥미롭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저명한 피리(한국의 전통 더블 리드 악기) 연주자이자, 지휘 자, 작곡가, 그리고 라디오 진행자인 원일은 나의 작품에 관한 방송 대담에서 이 구절을 개의 울음소 리에 비유했다. (원일의 ‘여시아문 이도 스페이스’, 「세바스찬 클라렌 인터뷰」, 2019년 11월 17일, 국 악 FM)

3) Billy Woods: Today, I Wrote Nothing, backwoodz studioz 2015.

4) Daniil Kharms: Today I Wrote Nothing, the Selected Writings of Daniil Kharms, Translated from the Russian by Matvei Yankelevich, New York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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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세바스티안 클라렌(Sebastian Claren)

세바스티안 클라렌은 하이델베르크, 베를린, 프라이부르크에서 작곡, 음악학, 철학, 그리고 예술사를 공부했다. 그는 발터 짐머만과 마티아스 스팔링거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다름슈타트 여름 강좌와 오스트라바 뉴 뮤직 데이에서 강사로 활동했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라이프치히 음악대학에서 현대음악을 가르쳤다. 2021년부터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작곡을 지도하고 있으며, 현재 베를린과 서울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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