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3
2025.12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글. 문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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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숙명
스스로 고유 문화를 업신여기던 1990년대 한국의 문화. 이것은 동양화[1]를 전공한 나를 오랫동안 침잠하게 했던 것이었다. “회화는 죽었다” 면서, 특히 동양화란 장르를 과소평가했다. 미술계에서는 한국 땅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는 이들조차, “왜 변하지 않는가”라며 동양화 전공자를 향한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은 개량한복을 입고 국악을 즐기며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들을 낯설게 바라보던 당대의 시선과 궤를 같이 했다. 지금은 레트로(retro), 뉴트로(newtro)라 해서 젊은 층도 한복 나들이를 하고 타 장르와 협업한 자생문화도 큰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가 한국 문화에 매료되어 있지만,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는 자생적인 문화는 ‘고쳐 쓸 것도 아닌, 버려야 할 구습’으로 치부되었고, 이러한 혼돈의 시기 속에서 이 분야에 속한 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이들이 해결해야 할 난제인 동시에 숙명적인 과제였다.
2. 가치발견
만학도로 유학길에 올랐다. 서양의 미술교육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선택한 방향이었고 그 길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조우한 미적 경험’을 학우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내려졌다. 날을 잡아 아무 버스나 타고 마음이 이끌리는 곳에 내려 마주한 해변가. 그 낯선 곳에서 마주한 야생식물의 군무를 스케치하고 그에 관한 시를 썼다. 해를 등진 채 바람에 흔들리는 그들의 짙은 모습에서 <검은 춤(a black dance)>을 착안했고, 문인화(文人畵) 풍의 스케치와 시,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형태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시도는 현지 교수진과 학우들의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다. 이 경험이 시발점이 되어 내가 가진 문화의 독특한 가치에 대한 애정이 빠르게 자라기 시작했고, 유학 기간 알게 된 서양의 현대 장르인 a/r/tography와 동양의 문인화를 결합하여 새로운 장르, 아토그래피컬 문인화(a/r/tographical literati painting, ALP)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작업을 ALP의 한 예시로 들어 졸업논문을 썼다. 이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이것을 국제 미술교육 잡지에 학술논문으로 기고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는 하대 받던 고유 문화에 적절한 전달방법을 가미하면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이 스케치와 영상물을 토대로 큰 작업으로 작품화 하려던 중, 야생식물의 검은 실루엣의 배경 -한 가지 색으로 정의될 수 없는 하늘 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다 우연히 찾은 자개로 화폭을 채웠다. 그리고 야생식물의 실루엣 부분은 붓질이 지나간 형상으로 드러나게 하는 작풍을 완성했다. 이렇게 하여 시를 곁들인 문인화풍의 스케치, 영상물, 그리고 평면자개회화가 일련의 <검은 춤>프로젝트가 되었다.
이렇게 낯선 타국의 문화를 ‘타자의 거울’로 삼아 자생적인 문화를 되돌아보고 확장하면서 나의 작업은 나름 확고해졌다. 역설적이게도 외국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통해 내가 가진 문화의 철학을 객관화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것은 보존해야 마땅한 소중한 것이라 교육받아 왔으나 ‘현대화는 곧 서구화’로 인식이 만연했고 문화적 열패감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유학 생활은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고유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함으로써 일종의 문화적 주권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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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고자 하는 것
국립무형유산원에서 몇 년간 멘토와 심사위원으로서 일한 경험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부터 전수 및 이수 받은 이들의 창작적 사고를 돕는 멘토링과 그에 따른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평가하는 일이었다. 멘티들은 그들이 전수받은 문화가 현대문화에 녹아들지 못하는 지점에서 길을 잃었고, 이것은 대중의 외면과 경제적 타격으로 그들을 위축시켰다. 멘토링 과정에서 나는 그들이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작가’가 되기를 바랐다. 선배들이 해오던 것을 ‘고스란히’, ‘묵묵히’, ‘그대로’ 하기보다는 ‘그들만의 목소리와 색상을 입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두 가지 다른 접근 방식을 동시에 활용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고유문화를 기반으로 한 모든 창작행위에 있어, ‘전통 기법’과 ‘개인 창작’,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무형의 문화유산은 후대에 온전히 전수하고 그 외 시간과 에너지를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 안에서 처절히 고민하고 고찰하여 ‘고유한 공동체의 작업’이 아닌, ‘고유한 자신만의 작업’을 하기를 부탁했다. 그렇게 되면, 후대는 전통기법을 확실히 배우는 동시에 선배의 창작활동을 보면서 자신들의 미래 향방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렇게 하면 문화유산도 보전하면서 현시대에 걸맞은 예술가들이 세상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무형문화재 관련 전공자뿐만 아니라, 미술 전공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한번은 대학에서 한국적인 것을 그리기를 요청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 몇몇이 화폭에 장독대, 하회탈, 장승, 자개함, 청자 이미지를 넣어 그려내려 하는 것을 강력하게 경계하며 지도했던 경험이 있었다. 학생들은 ‘향토적이고 민속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과 혼동하고 이것을 그대로 화면 안에 배치해 그려내면 한국적인 것이 되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그림을 업으로 하는 예전 사람들 사이에서도 만연했는데, 이런 고질적인 행태가 자생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한 창작을 그동안 ‘독선적이고 오만한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고 외부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게 만든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이다. 업신여길 만했고 공격받을 만했다. 미술 교육에서도 투 트랙 전략을 적용하여 동양화 재료 운용의 기술적인 부분을 체화하도록 훈련하는 한편, 리부팅 된 자아로서 미적 경험을 토대로,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기를 바랐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것’은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기 보다는 철저한 기획과 고찰을 거친 후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감이 동반된 한 개체의 자유의지에 기반한 그 무엇이다. 그것은 이 개체의 미래 삶 전체와 동행하며 정체성을 반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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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함석헌 선생은 전통을 '살아 움직이는 씨앗'에 비유했다. 고유문화를 기반으로 창작자가 '하고자 하는 것'을 실천하는 행위는 바로 그 씨앗을 움직이게 하는 생명 활동과 같다. 충분한 기획과 책임감이 동반된 자유의지로부터 시작된 창작은, 개체(작가)의 삶과 정체성을 반영하며 깊은 성취감을 선사한다. 이 움직임이 시작될 때 '유(有)에서 또 다른 유(有)'로의 발아가 일어나고, 비로소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꽃이 피어난다. 이 모든 움트기는 역사가 되고, 그 꽃피움의 향기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한국적인 것'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