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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4

2025.12

‘경계’로서의 시도

: 말 없는 음악으로 이야기를 건넨다면

​글. 백소망

무언 음악극, 말이 없는 극은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이 공연은 ‘말 없는 극’을 음악으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실험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무언극은 7세 이상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인어공주>다. 잘 알려진 이야기의 재현은 관객을 안심하게 하는 동시에 어떤 표현 방식을 통해 전개될 것인지 호기심을 갖게 한다. 더구나 그간 왓와이아트가 보여준 음악 행보를 생각할 때, 이 대중적인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줄지 무척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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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바다-경계-육지로 나뉜 공간 배경을 ‘음악’으로 구분한다. 세 명의 작곡가는 각각의 공간을 하나씩 맡아 작곡했으며, 그에 따른 음악 어법 또한 다르다. 어법이 다른 음악을 통해 구분된 세계는 더욱 뚜렷해지고, 그 안에서 무용수와 마임 아티스트의 몸짓으로 인어공주 이야기가 전개된다. 연주자들은 ‘공기의 정령’으로 무대 위에 존재하며 극에 참여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세 개의 세계로 나누어 바라보는 시선은 왓와이아트의 음악 세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의 음악은 바다와 육지 사이에 살아가는 인어공주의 세계, 즉 ‘경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인어공주가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주저하고, 갈등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음악적 고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공연을 통해 들려주는 음악은 신민요 <동해바다>부터 시조, 즉흥연주,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이것은 ‘전통’이라는 하나의 세계에 포섭되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세 명의 작곡가를 통해 음악 어법의 구분은 뚜렷해졌으나, 그것을 모두 연주하는 왓와이아트의 음악 세계는 매끄럽게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 ‘공기의 정령’으로 무대 위에 존재한 것처럼, 이들과 이들의 음악은 마치 ‘공기’처럼 세계를 유영하는, 명확한 형체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물질’이었다.

음악을 중심에 둔 이 ‘말 없는 극’은 음악 외적인 요소들이 함께 배치되어 이야기 전개를 돕는다. 공연에는 영상, 소품, 의상 등 다양한 시각적 장치들이 사용되고, 이 요소들은 음악과 병치되면서 공연의 층위를 확장한다. 공연 전반의 비주얼 콘셉트는 이 공연의 의상과 안무를 담당한 드랙 퍼포머 모어의 미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무대 전반에 강한 인상과 시각적 효과를 형성한다. 동시에 이 시각적 요소들은 무대 위 연주자와 배우의 신체, 그리고 음악이 중심이 되는 구조 안에서 어떤 비중으로 드러나고, 어떻게 절제될 것인지 계속해서 고려된다. 음악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극’ 안에서 시각적 장치의 강도와 밀도가 조정되는 과정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 무언 음악극에서 ‘음악하기’의 특성과 ‘극’이 가진 서사적 특성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할 것인지는 이후에도 탐색이 이어질 지점으로 보인다.

공간 역시 음악극에 시각적 요소를 배치한 공연 구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 공연이 펼쳐진 플랫폼엘이라는 공간은 하얀 벽과 개방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어 영상 사용에 적합하며, 공연과 전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이 공연에서 무대는 극이 연행되는 전형적인 ‘막’ 형식이 아닌, 가운데 놓인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사용되었다. 이는 연주자들이 ‘경계’에 놓인 ‘정령’의 존재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들을 경계로 극의 배경 공간이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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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객과의 거리감을 조율하는 데는 보다 세심한 설계가 요구된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 배우의 동선과 시선 처리, 장면에 따른 조명 변화는 음악과 더불어 관객의 감상을 돕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무대 안팎을 조율할 수 있는 외부의 시선, 즉 연출적 협업이 더해진다면 다음 단계의 작업을 보다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음악으로 말 건네기. 이것은 ‘말’ 혹은 ‘글’이라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그렇게 하고자 시도할 때 늘 ‘잔여’가 남는 행위이다. ‘무언 음악극’은 ‘언어화’의 한계를 넘고자 하는 시도이다. ‘말’로 하지 않고 전하고자 하는 용기, 설명하지 않고 ‘음악’ 그대로 느끼게끔 하는, 잘 아는 이야기를 낯선 음악을 통해 변주하려는, 어쩌면 음악이 가진 성질에 가장 부합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여러 시각적 요소는 음악이 남긴 ‘잔여’의 공간을 채우며 이야기를 형성한다. 이 모든 것은 무대 위에서 ‘생동하는 물질’로 작용한다. 각기 다른 형질과 질감을 가졌지만, 살아 움직이고, 매개하고, 무대라는 공간에서 ‘얽힘’을 통해 각기 무언가 빚어내고 마는 ‘물질’의 향연. 왓와이아트의 ‘경계’로서의 시도는 ‘음악극’의 전형이 아닌, 그들이 가진 ‘경계성’과 ‘생동하는 물질’들의 협업이 이뤄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말’과 ‘글’이라는 강력한 물질을 매개로 하는 ‘극’에서 보조적으로 쓰이는 ‘음악’의 위치를 바꾸어낸 시도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게다가 익숙한 동화인 <인어공주>를 세 가지 장르의 음악, 그리고 시각적 요소들의 배치로 무대 위에 펼친 시도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예술가의 실천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무대 위 드러난 ‘얽힘’이 얼마든지 재구성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공연은 무수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왓와이아트의 이러한 ‘낯설게 하기’ 시도가 지속되어 관객과의 소통 지점이 더욱 명확해지고, 확장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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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바다와 육지, 경계 어디에든 존재하며, 누군가의 삶을 가능케 하는 물질로 작용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왓와이아트의 음악이 세계 어딘가를 유영하며 누군가에게 음악적인 만족을 선사하는, 이 세계 운용에 꼭 필요한 음악인 것처럼 말이다. 안락한 위치에 안착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은 그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왓와이아트가 무언 음악극 <인어공주>를 통해 실천한 ’경계‘로서의 시도는 이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힘찬 동력이 될 것이다. 이 시도를 딛고, 낯섦이라는 용기의 씨앗을 음악에 담아, 이 세계 곳곳에 흩뿌려주기를 기대한다.

사진

​왓와이 아트 무언음악극 <인어공주> 실황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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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백소망

백소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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