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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

2025.12

전통은 어떻게 지금의 무대에 오르는가

​글. 정재은

영국의 겨울 극장가는 더 화려해진다. 11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런던 웨스트엔드뿐 아니라 맨체스터, 리즈, 브리스틀 같은 지역 도시의 극장들까지 일제히 판토마임(pantomime, 이하 판토) 시즌에 돌입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판토마임이 몸으로 표현하는 무언의 움직임이라면 영국인들이 말하는 판토는 완전히 다른 장르의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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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토는 동화나 민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구조로 노래와 춤, 슬랩스틱 코미디에 시사 풍자가 혼합된 종합 공연이다.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아르테의 과장된 몸짓과 고정된 캐릭터 유형에서 기원을 찾기도 하는데, 18-19세기 영국에서 가족 단위 관객을 끌어들이는 공연 형식으로 발전했다. 판토는 처음부터 엘리트 예술이 아닌 대중적인 극이었다. 그래서 지역 극장이나 배우, 관객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성장했다. 이처럼 관객과 탄탄한 유대 관계를 형성해온 판토는, 영국에서 가장 큰 휴가철이자 우리나라의 명절에 해당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웨스트엔드의 주요 극장에 오른다.

판토는 ‘신데렐라’, ‘알라딘’, ‘잭과 콩나무’처럼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동화를 뼈대로 삼는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규칙 역시 분명하다. 관객 참여를 전제로 한 구조, 과장된 몸짓과 슬랩스틱 코미디, 남성 배우가 맡는 ‘데임(Dame)’ 캐릭터와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소년 영웅, 그리고 웃음과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형식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고정된 틀 안에 담기는 내용은 매년 새롭게 갱신된다. 지역 정치와 사회적 이슈, 그 지역 관객만이 알아들을 농담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전통은 고정된 텍스트로 보존되는 대신 공유된 약속과 형식으로 남아 동시대 관객의 언어로 번역된다. 이러한 유연성 덕분에 판토는 오래된 옛날 공연이 아니라 ‘지금의 공연’으로 인식된다. 이미 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올해는 무엇이 달라졌을지 궁금해하며 극장을 다시 찾는다.

판토를 판토답게 만드는 핵심은 관객 참여에 있다. 선과 악의 구도가 분명한 이야기 속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정의의 편에 서고, 악당이 몰래 등장하면 객석에서 “뒤에 있다!”는 외침이 터져 나온다. 아이들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어른들은 이중적인 농담과 풍자를 통해 또 다른 층위의 재미를 발견한다. 이러한 집단적 반응이 공연의 일부로 작동하며, 판토는 무대와 객석이 함께 완성하는 살아 있는 공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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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토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가족용 오락극이다. 3세대가 함께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며 즐길 수 있고, 자신이 어렸을 적 보았던 공연을 자녀와 손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공통된 경험은 후대에도 물려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극장에서 공연을 경험하고, 학교에서도 친숙하게 공연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라서도 공연장을 찾는다.

무엇보다 판토는 극장이 관객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방식이자 영국 공연 생태계의 중요한 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판토가 단지 축제 분위기의 오락이 아니라 영국의 극장들이 일 년을 버티게 하는 구조적 장치라는 것이다. 보통 4주에서 길게는 6주 정도 이어지는 판토 시즌 동안, 극장은 연간 매출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다. 지역 극장들 가운데는 판토 한 시즌으로 전체 수입의 30~50퍼센트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말연시 가족 관객이 집중적으로 극장을 찾고, 평소 연극을 자주 보지 않던 사람들까지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면서 객석 점유율은 거의 만석에 가깝게 유지된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소비가 집중되는 시기로 티켓 매출뿐 아니라 프로그램북, 굿즈, 음료 판매까지 더해지며 극장은 가장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한다. 이 수익은 단지 그해의 운영비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시즌에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실험적 작품, 신작 개발,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한국 공연예술계에는 여전히 상업예술과 순수예술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구분은 인식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원금 신청 과정에서부터 제도적으로 작동한다. 공연은 상업적인가, 순수예술인가로 나뉘고, 전통예술은 대개 ‘비상업적’이며 ‘보호가 필요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전용 공연장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하며, 전통공연을 일반 공연장과 분리해왔다. 그 결과 전통공연은 흥행과는 거리를 둔 채 공공 지원에 의존하는 구조로 자리 잡았고, 관객의 일상적인 동선 밖으로 밀려나면서 접근이 더 어려워졌다. 공연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 역시 관객 확대보다는 행정적 요건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왔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현실을 구조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논의보다, 지원 제도에 부합하는 형식을 갖추는 일이 우선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전통공연은 점차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기 어려운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전통을 지킨다는 말은 종종 ‘형식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영국 판토가 보여주듯 전통은 고정된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틀 안에서 끊임없이 현재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전통공연 역시 보호의 논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반 관객이 드나드는 공연장과 같은 무대 위에서 다른 장르의 공연과 나란히 선택받을 수 있는 구조를 상상해야 한다. 전통을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은 결국 계속 공연하는 것이다. 관객의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만나고, 때로는 웃고 즐기며, 그 수익으로 다음 세대의 예술을 준비하는 것. 영국의 판토마임은 전통이 어떻게 현재형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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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재은

정재은. 공연 칼럼니스트. 런던에서 공연을 보고 글을 쓰고 있다. "공연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공연을 통해, 글로써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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