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7
2025.WINTER
겹쳐진 시간, 감각의 밀도
: 음반 〈오래된 순간〉 공동 프로듀서의 대담
글. 유준
* 이 글은 WhatWhy Art × vurt. 프로젝트 음반 〈오래된 순간(Ancient Moment)〉의 공동 프로듀서 유홍(왓와이 아트 음악감독, 대금연주가), 유준(vurt. 디렉터, 전자음악가/디제이)의 대담을 정리한 글입니다. (편집자 주)
전통음악과 전자음악의 협업은 여러 시도로 축적되어 왔다. 두 장르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사건이 아니며 결합이라는 표현 역시 관습적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럼에도 한국 전통악기로 구성된 앙상블 왓와이 아트WhatWhy Art와 서울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씬의 벌트vurt.의 만남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다. 이들은 익숙한 방식, 즉 ‘무엇을 결합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어떤 방식과 태도 속에서 연주해야 하는가’, 즉, 자유로운 연주가 공존하는 조건을 고민하는 쪽으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오래된 순간〉 프로젝트에서 전통 악기와 전자음악은 서로의 재료나 배경으로 쓰이지 않는다. 양측은 ‘즉흥’이라는 동일한 전제 위에 놓인 채 각자의 방법과 감각을 유지한 상태로 마주한다. 여기서 즉흥은 장르적 장치보다는 타인의 소리와 시간에 어떻게 반응하고 개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실천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대담은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를 제시하기보다 작업과정에서 드러난 사고의 흐름과 판단의 기준을 기록한다.
WhatWhy Art × vurt. 프로젝트 음반 〈오래된 순간> Part1 / Part2의 공동 프로듀서인 유홍과 유준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통과 전자라는 서로 다른 감각과 즉흥에 대한 인식이 어떤 방식으로 조율되었는지를 차분히 짚어보았다.

1. 만남
유홍: 저희가 처음 만난 게 벌트에서 22년에 열렸던 ‘꿈kkum LIVE: 자유-즉흥 연주회’였어요. 당시에 저는 대금 연주자로 참여했고, 그레고리(Grégoire Simon/비올라), 제레드(Jared Redmond/피아노), 리처드(Richard Dudas/전자음악)와 함께 연주했죠. 유준 님은 벌트의 운영자였고 공연 중에는 음향을 담당하셨죠.
유준: 네, 그게 첫 만남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작곡가인 제레드 레드먼드의 큐레이션으로 유홍 님을 비롯한 여러 연주자들이 벌트의 관객들에게 즉흥음악을 들려준 멋진 밤이었어요. 연주자들이 서로에게 반응하며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가는 즉흥음악에 제가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유홍: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후에 제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공연에 유준 님이 디제이로 참여하시기도 하고, 23년과 24년에는 ‘한국즉흥음악축제’에서 함께 공연하면서 자주 교류하게 되었죠.
유준: 맞아요. 개인적으로 즉흥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자마자 여러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어요. 디제잉을 중심으로 퍼포먼스를 해온 입장에서 악기 연주자와 즉흥적인 교감을 나누며 흐름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여러 공연을 거치면서 나름의 방식이 생겨나게 됐어요. 그때쯤 왓와이 아트와 벌트가 공동으로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고요.
유홍: 그 공연이 24년 12월에 벌트에서 열린 ‘꿈 kkum LIVE x 왓와이 아트 <자유즉흥>’ 공연이었죠. 이번에 발매된 앨범 ‘오래된 순간’의 모태가 된 공연이기도 하고.
유준: 네. 제가 큐레이션 한 꿈 kkum LIVE 공연에서 전자음악가들과 왓와이 아트의 연주자들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본 공연이었어요. 즉흥이라는 개념으로 처음 함께 공연을 한다는 막막함과 설렘이 동시에 있었고, 그래서 공연 준비 단계부터 세심하고 꼼꼼하게 진행됐습니다. 공연을 마친 뒤, 양측 연주자들의 만족도가 꽤 높았기 때문에 라이브로 녹음된 음원을 남겨놓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장 녹음 상태가 좋지 못했어요. 그래서 바로 한 달 뒤인 25년 1월에 ‘STUDIO Y’에 모여서 다시 녹음했고요. 그게 이번에 두 장의 LP로 발매된 앨범 <오래된 순간> (Part1 / Part2)입니다.
2. 참여 아티스트
유홍: 왓와이 아트는 네 명의 멤버가 항상 함께 움직여왔고, 이번 프로젝트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는데, 벌트 쪽은 유준 님이 중심이 되어 참여 아티스트를 구성했어요. 어떤 전자음악가가 이 프로젝트의 조건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전통악기 연주자와 이어졌는지 궁금했어요.
<오래된 순간> 트랙 리스트
PART 1-A: 유홍(대금) x 운진(전자음악)
PART 1-B. 이화영(가야금) x 호수(전자음악)
PART 2-A. 강지은(해금) x 디질로그(전자음악)
PART 2-B. 왓와이 아트 x 시옷(전자음악)
유준: 운진 님의 경우는 제가 어떤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큼 오랫동안 다양한 경험을 공유한 전자음악가에요. 몇 년간 외국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시점이기도 했고, 워낙 경험이 많은 분이라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이 프로젝트에서는 상대를 인식하고 조율할 수 있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경험이 많은 운진 님과 유홍 님이 매칭되었을 때 연주가 한 쪽 방향으로 기울지 않으면서 각자의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호수는 즉흥연주라는 관점에서 제가 그동안 협업해 온 전자음악가들 가운데 이 프로젝트의 조건과 가장 잘 맞는 팀이었어요. 두 사람이 연주할 때 나타나는 반응의 방식 - 한 사람이 제안하면 다른 사람이 그 제안을 변형하거나 확장하는 구조 - 은 이 작업이 요구하는 즉흥의 태도와 밀접하다고 느꼈습니다.
시옷 님은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온 DJ인데,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기보다 지속적으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해 온 아티스트입니다. 타악기와의 매칭은 전자음악가에게 매우 어려운 조건인데, 그 어려움 자체를 회피하지 않는 태도가 이번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었고요.
그리고 저(디질로그)는 해금의 질감, 마찰이 많고 명확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소리에 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다루는 소리와 해금 소리가 감각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고, 그래서 해금 연주자 강지은 님과의 연주가 자연스럽게 구상되었습니다.
3. 즉흥에 대하여
유홍: 이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라면, 역시 ‘즉흥’이겠죠.
유준: 제가 처음 즉흥연주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처럼, 음악을 듣는 분들 역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즉흥이라고 볼 수 있는지 궁금하실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사전 약속이나 조율, 혹은 함께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 정도는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경험했던 즉흥연주에서는 공연 전에도, 공연 중에도 약속된 것이 없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홍: 운진 님과 공연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공연 전에 운진 님이 전자악기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고, 그걸 바탕으로 어떤 감각이 어울릴지를 생각한 뒤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즉흥연주에서는 미리 약간의 조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함께 연주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선택을 즉흥적인 판단으로 이어가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말은 아무런 준비 없이 연주한다는 뜻은 아니고, 즉흥연주를 가능하게 하려면 각자가 미리 준비할 음악적 재료, 연습, 그리고 다른 악기와의 앙상블 경험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포함하고 있어요.
유준: 그럼, 연주하는 순간에 즉흥적인 판단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유홍: 저는 즉흥을 이야기할 때, 항상 두 가지 판단을 동시에 놓고 생각해요. 하나는 전통 악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을 얼마나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소리가 지금 형성되고 있는 사운드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입니다. 이 둘은 분리해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연주 안에서 동시에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금답게 들리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성질만을 끝까지 밀어붙인다고 해서 음악이 성립하는 건 아니거든요. 함께 연주할 때는 우리가 어디에서 접속하고, 어느 지점에서 각자의 위치를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 계속 요구돼요. 저는 그 판단이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상태 자체를 즉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흥음악은 실제 연주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면서 매 순간 결정을 수정해 나갈 수밖에 없어요. 실험적인 소리라는 표현도 종종 하나의 범주처럼 사용되는데, 저는 그 안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봐요. 전통 악기 자체가 지닌 물리적 노이즈가 있고, 지금 이 연주 안에서 생성되는 실험적 사운드가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소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려는지, 아니면 지금 형성 중인 사운드 환경과 관계를 맺으려는 지에 대한 선택입니다. 즉흥에서는 그 선택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죠.
유준: 제 경우에는 판단과 선택에 앞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다룰 수 있을지, 즉 즉흥연주가 가능한 조건과 상태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다뤄온 전자음악은 사람이 명령을 내리고 기계가 이를 수행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에요. 그리고 그 안에서는 여러 신호간의 시간 동기화를 통한 기계적 시퀀스가 중요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다만 이런 방식에서는 시간(클럭/BPM)이 고정되어 함께 움직이게 되므로, 악기 연주자와 즉흥연주를 할 때 이 점이 계속 걸리는 지점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신호를 동기화하지 않은 채 독립된 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연주자의 시간을 신호로 변환할 수 있을까, 기계적 시퀀스 보다는 몸의 감각에 의존하는 선택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하나씩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시간 흐름이 전체를 관통하지 않아도, 각각의 신호가 독립된 시간을 유지한 채 서로의 음악적 맥락에 반응하며 존재할 수 있는 지점을 찾게 되었고요.
호수는 이 상태를 두고, “시간이 분명하게 인식되는 순간 즉흥은 이미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시간을 조절하고 있다는 감각보다는 하나의 상태 안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 그리고 무언가를 맞추려 하기보다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며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어요. 호수의 이 말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변화하고 있던 저의 상태를 다른 언어로 확인해 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4. 공동과 공존
유홍: 이번 프로젝트 작업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연주하면서 어느 한쪽이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런 판단이 자연스럽게 연주에 반영되었다는 점이에요. 연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심이 만들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중심이 생기려고 할 때마다 이게 과연 지금 필요한 상태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한쪽으로 흐름이 기울어지는 게 연주를 편하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 작업의 조건과는 조금 어긋나는 느낌도 있었고요. 그래서 연주 중에 이 소리가 더 이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여기서 멈추는 게 맞는지를 조금 더 분명하게 확인하려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그 짧은 과정이 결과적으로는 연주의 흐름, 음악의 결과를 바꿔놓았다고 느껴요.
유준: 저도 비슷했어요. 이 작업에서는 누가 앞에 서 있는지, 누가 따라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웠어요. 오히려 그런 구분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오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유홍: 이건 연주 중에 새로 만들어진 태도라기보다는, 처음부터 이 작업이 공동으로 기획되었다는 조건이 계속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음악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상태가 연주 안에서도 유지되다 보니 소리의 방향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기보다는 두 그룹의 소리가 공존하는 방식이 이 음악의 성격으로 남게 된 것 같고요.
유준: 공동의 관계가 기획에서 시작해 연주와 녹음까지 이어지면서, 음반 전체의 성격, 소리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남게 된 경우인 것 같네요.
5. 녹음, 그리고 발매
유홍: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어떤 게 있나요?
유준: 녹음은 저와 사운드 엔지니어 정모건 님이 함께 담당했어요. 이 과정에서 가장 신중하게 접근했던 건 전통 악기 소리에 대한 기준을 성급하게 정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제가 전통 악기에 대한 기준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도 있었지만, 녹음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이 음악이 어떤 결과로 완성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더 컸습니다. 그래서 녹음 단계에서는 가능한 한 색채를 부여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했고, 후반 작업에서도 계속 들어보며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 시간을 길게 가져갔어요.
믹싱은 제가 담당했는데, 의도적으로 전통 악기를 전면에 배치하는 선택을 피했습니다. 조금만 앞으로 두어도 훨씬 이해하기 쉬운 구조가 되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서로의 소리가 공존하고 있던 상태가 흐트러질 수 있다고 느꼈어요. 전통악기를 여러 소리 중 하나로 두고 싶었고, 그 안에서 각자의 존재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이 형성되도록 구성했습니다.
마스터링도 중요했어요. 녹음과 믹싱을 거치면서 밸런스는 잡혔지만, 음향적 기준(레퍼런스)이 명확하지 않은 채 음악이 완성되었어요. 그래서 경험 많은 엔지니어에게 최종 작업을 맡기는 것이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탈리아 로마에서 실험적인 사운드를 전문으로 하는 Enisslab 마스터링 스튜디오와 인연이 닿았고, 세계적인 엔지니어 Giuseppe Tillieci가 마스터링을 맡아 결과적으로 밀도 높은 사운드로 완성되었습니다.
유홍: 발매와 유통 과정도 독특한 면이 있어요. 기존의 음반사를 이용하지 않고 독립적인 음반사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해외 유통을 중심으로 계획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디지털과 LP로 발매되었고, 현재는 유럽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숍들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지요?
유준: 이 음반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대중적인 곳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들리는 것보다는 비슷한 음악을 다루는 곳에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들리는 방식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존의 음반사에 접촉하지 않고 이 앨범을 발매하기 위한 독립 레이블(WhatWhy Art x vurt.)을 만들었고, 저희와 결이 맞는 런던의 독립 배급사(Space Cadet)를 통해 음악을 유통하게 되었습니다. 앨범은 두 장으로 나뉘어서 Part1 / Part2가 따로 발매되었는데, 이것도 유럽 발매를 염두에 두고 마스터링 스튜디오, 배급사와 상의하여 전략적으로 기획되었어요. 언어(가사)가 없는 음악이므로 국경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서 전 세계 배포를 목표로 하고 있고요. 온라인은 Juno.co.uk / Beatport.com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전자음악/인디 플랫폼을 포함해 다양한 비주류 음원 전문 사이트에 올라온 상황이고, LP는 런던, 베를린, 파리, 로마 등 다양한 유럽 도시의 실험음악 LP 전문점을 중심으로 판매가 시작되고 있어요. 서울에서 녹음되었지만, 마스터링과 LP 제작은 로마에서, 배포는 런던에서 시작해서 국내에는 아직 LP가 안 들어온 상황이에요. 한국과 일본에서는 오는 3월부터 소규모 LP 전문점을 중심으로 판매될 예정입니다. 서울에서는 망원동의 Rope Editions에서 곧 두 장의 LP를 동시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6. 남겨진 상태
유준: 저에게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남았어요. 전자음악가로서 익숙한 방식을 넘어서 연주자와 즉흥적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을 실제 작업 안에서 실행하면서 많이 고민했고, 그게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음악적 변화를 불러왔어요. 또, 기획자로서 다른 씬(scene)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체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제가 유연해질 수 있는 부분의 경계가 확장되었어요. 지금은 이 프로젝트 이후에 제가 어떤 상태로 이동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고, 왓와이 아트와의 다음 작업도 기대가 되네요. 유홍 님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데, 곧 들려드릴 수 있을 거예요.
유홍: 전자음악과의 협업은 왓와이 아트의 프로젝트 중에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특히 이번 작업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했기보다는 연주 중에 신중하게 고민했던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언제 개입하고 언제 물러나야 하는지, 어떤 순간에 내 소리를 더 신뢰해도 되는지 같은 것들이요. 그 판단들은 아직 진행형이고, 어쩌면 정리되지 않는 상태로 남겨 두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 또한 이 프로젝트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느껴요.
〈오래된 순간〉은 전통과 전자의 결합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즉흥의 방식을 단정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음악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지 않도록 유지하려는 태도에 더 가까운 작업이었다. 공동 프로젝트라는 구조에서 출발한 이 작업의 성격은 연주 안에서의 선택 방식으로 이어졌고, 녹음과 발매의 과정에서도 비슷한 감각으로 반복되었다. 그 결과 이 음악은 특정한 중심을 강조하기보다는, 각 소리가 어떻게 공존하며 서로 반응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 작업을 통해 음악이 무엇이라고 딱 잘라 정의 내리는 대신, 음악이 연주되는 순간의 분위기와 공존의 방식 자체를 보여주려 했다. 익숙한 흐름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는 감각, 너무 빠른 결론에 기대지 않는 태도, 그리고 그 여백 안에서 음악을 다시 듣게 만드는 방식. 〈오래된 순간〉은 그렇게 열린 채로 남아 있다.
이제 그다음 판단은 이 음악을 듣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질 것이다.
LINKS
https://www.youtube.com/watch?v=usqPff9u7Js&list=PLVSGE9j9TmDgl2vXmGRYstOhd2i-qMQSG
https://www.juno.co.uk/artists/Whatwhy+Art/?media_type=vinyl

유준
서울을 기반으로 한 전자음악 공간/단체 vurt.의 공동 설립자이자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오랫동안 기획과 공연 퍼포먼스를 병행하고 있고, Djilogue라는 이름으로 실험적인 전자음악 라이브와 테크노 디제잉을 이어가고 있다. WhatWhy Art와는 2023년부터 협업을 시작했으며, WhatWhy Art × vurt. 프로젝트 음반 〈오래된 순간(Ancient Moment)〉에 공동 프로듀서이자 전자음악가로 참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