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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

2026.SPRING

낯선 세계를 곁의 풍경으로 만드는 일

: 왓와이 아트 × 벌트 〈오래된 순간〉

​글. 김리슨

1. 자유 즉흥이라는 태도

즉흥 음악을 들을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음악가들은 연주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 혹은 상대 연주자의 마음을 듣고 있는 걸까. 어떤 면에서 자유 즉흥 음악이란 창작자와 연주자의 태도를 설명하는 말이다. 장르라기보다는 관점에 가깝다. 그러니 즉흥 음악은 어느 장르에서든 가능하다. 물론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재즈가 있겠지만, 현대 음악에서 자유 즉흥이라는 실천은 그보다 더 멀리, 깊게, 자유롭게 나아가는 중인 것 같다. 한국적 현대 음악 앙상블 왓와이 아트와 전자음악 단체 벌트의 협업 앨범 〈오래된 순간〉이 바로 그런 프로젝트다.즉흥 음악을 들을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음악가들은 연주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 혹은 상대 연주자의 마음을 듣고 있는 걸까. 어떤 면에서 자유 즉흥 음악이란 창작자와 연주자의 태도를 설명하는 말이다. 장르라기보다는 관점에 가깝다. 그러니 즉흥 음악은 어느 장르에서든 가능하다. 물론 그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재즈가 있겠지만, 현대 음악에서 자유 즉흥이라는 실천은 그보다 더 멀리, 깊게, 자유롭게 나아가는 중인 것 같다. 한국적 현대 음악 앙상블 왓와이 아트와 전자음악 단체 벌트의 협업 앨범 〈오래된 순간〉이 바로 그런 프로젝트다.

프리 재즈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은 “즉흥 음악은 단순히 자유롭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상태에서 나오는 독창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순간〉 역시 아티스트 각자가 공연자로서 오랫동안 발굴해 온 감각들이 드러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더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기만의 소리를 탐구해 온 사람들이 한 시공간에서 만나 예측 불가능한 음향적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다. 상대의 소리가 내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내 소리는 상대에게 어떻게 닿는지 상상하고 조율해 가는 과정 자체가 곧 창작이 되는 일. 음악가들은 언제 개입하고 언제 물러날지, 선율을 뽑아낼지 질감을 일으킬지, 어디에서 불협화하며 어디서 협화할지 계속 고민하며 연주하는 듯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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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 연주자 유홍은 이 앨범에 관한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께 연주할 때는 우리가 어디에서 접속하고, 어느 지점에서 각자의 위치를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 계속 요구돼요. 저는 그 판단이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상태 자체를 즉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음악가 디질로그의 “상대를 인식하고 조율할 수 있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말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한편 전자음악 듀오 호수는 “무언가를 맞추려 하기보다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며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오래된 순간〉에서 자유 즉흥 연주가 형식의 부재를 넘어 서로 다른 소리들이 쌓였다가 무너지고 다시 형태를 바꾸는 방법론임을 드러내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연주자들은 어떤 구조를 세우기보다 매 순간 발생하는 숨과 진동, 회로와 재질의 변화에 대응하며 방향을 조정해 간다.

2. 어떻게 들을 것인가

그럼 듣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것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즉흥 음악 연주자들이 녹음실에서 가장 먼저 의식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과 상대 연주자일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각과 서로의 반응을 의식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이곳의 나는 그 결과물을 듣는 사람이다. 그들의 관계 맺기에 직접 동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듣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듣는 것은 그들이 듣는 것과 과연 같을까. 이러한 의문, 이 같은 거리감이야말로 이 앨범을 듣는 가장 흥미로운 조건인지도 모른다.

​​당연히도 내게 가장 크게 들린 것은 개념이나 담론보다는 소리와 감정이었다. 호흡, 마찰, 공기, 운동성, 잔향, 그리고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한 공간 안에 머무는 울림이나 머뭇거림 같은 것들. 사실 한국의 전통 악기와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전자음악 기기들은 서로 공교하게 합치될 소리를 가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조율 체계와 음고부터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러한 차이에 감각을 열어둔 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그렇게 듣다 보니 처음에는 낯설고 비유기적으로 들리던 소리들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자기만의 흐름과 질서를 조금씩 이루어 가고 있었다.

3. 〈오래된 순간〉이 들려주는 세계

수록곡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름답다. 파트 1의 첫 번째 트랙, 유홍(대금)과 운진(전자음악)의 협주는 처음부터 아득한 과거 혹은 미래의 어딘가를 탐사하듯 움직인다. 호기심을 품은 듯한 앰비언트 사운드 위에 비현실성을 풍기는 대금 연주가 얹힌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소리보다 한결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드는 대금은, 그것이 가락이나 감정을 만들어내는 악기이기 이전에 숨과 공기를 소리로 변모시키는 악기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운진의 전자음악은 좀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스산한 바람 소리를 머금고 출발한 전자음은 리듬과 색채를 변주해 가며 다양한 기후 속으로 대금을 초대한다. 그러면 그 기후에 맞게 유홍은 천연히 방향을 틀며 또 다른 소리를, 때론 서늘하고 때론 격정적인 목관 악기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파트 1의 두 번째 트랙, 이화영(가야금)과 호수(전자음악)의 협연은,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장 현실적이고도 인간적으로 들린다. 작품 전체가 살아 꿈틀거린다. 협주는 가야금 현의 진한 울림으로 문을 연다. 줄이 뜯기고, 그 진동을 머금은 주악이 불규칙한 파동처럼 이어진다. 그것은 어쩐지 늘 안도와 불안 사이를 오가는 우리의 마음 같기도 하다. 호수의 앰비언트는 묵묵히 색감과 형상, 기분을 만들어내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가야금의 물질성은 이상하게도 인간의 피부마냥 낯설지가 않다. 줄의 탄성, 손가락의 압력, 나무의 울림 같은 것들이 내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가야금 소리가 호수의 음악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이다. 현이 뜯긴 뒤 남는 잔향, 그 잔향이 전자음의 흐릿한 표면과 만나며 생겨나는 미세한 번짐이 매혹적이다.

파트 2의 첫 번째 트랙, 강지은(해금)과 디질로그(전자음악)의 협연은 앨범을 통틀어 가장 깊은 장소로 들어간다. 하나의 흐름으로 오래 잠긴다. 웅웅거리는 전자음과 삐걱거리는 해금 소리. 이 조합은 왠지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어둡고 축축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초반부터 지속되는 낮고 그르렁거리는 드론음은 그런 자연의 어떤 측면을 재현하는 것처럼도 들린다. 해금 연주는 그 자체로 동물적인 질감을 띤다. 활이 긁는 현의 소리는 언뜻언뜻 망설이다가도 과감히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지는, 깊숙한 숲속 어드메에 사는 시커먼 동물 같다. 이런 관찰을 이어가다 보면,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이 점차 적응해 가듯 소리는 더욱 선명해지고 감각은 뾰족해진다. 이것은 가장 밤의 음악, 가장 본능적인 음악 같다. 서로의 숨에 귀 기울이는 밤의 소리들.

마지막 작품, 파트 2의 두 번째 트랙에는 왓와이 아트의 음악가들과 타악기 연주자 김웅식, 그리고 전자음악가 시옷이 함께했다. 시옷의 희뿌연 노이즈와 탁한 샘플들이 안개 낀 미지의 공간을 만들어내면, 김웅식의 징과 꽹과리를 비롯한 전통 악기들은 서로에게 적당한 장소를 내어주며 조심스레 연주를 이어간다. 이 협주에서는 어느 정도 기승전결의 흐름을 가져가면서도 그 역동 속에서 누구 하나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래선지 각 악기가 인지되기 전에 모든 소리가 하나의 몸처럼 다가온다. 이것은 뭐랄까, 밀도 높은 덩어리 같다. 특히 후반부에서 들려주는 거칠고 뭉텅한 소리들의 향연은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운다. 압도적이다.

4. 듣기에 대해 생각하기

듣기의 특권, 듣기의 능동성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음악과 소리 앞에서 나는 그 어떤 사람이기 이전에 듣는 사람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기에, 그보다 더 나은 자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선 나는 내가 듣는 것을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판단하기보다 경험하기, 분석하기보다는 감각하기를 통해.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로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상상되거나 해석되기에 앞서 실재하는. 그런 이유로 내 안에서 끝내 다 설명되지 않는 소리들을 나는 좀 더 오래 붙잡고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듣는 일은 수동적 행위가 아니다. 듣기는 아주 특별하고도 적극적인 행동이다.

이런 식으로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멀게만 느껴지던 대상들도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즉흥 앨범 〈오래된 순간〉을 즐겁게 들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익숙하게만 듣던 방식에서 벗어나, 듣기의 경계를 흔드는 음악을 기꺼이 마주하는 일. 생경하고 이상하게 들리던 소리들이 어느새 풍광이 되고, 기후가 되고, 세계가 되는 경험. 이것이야말로 〈오래된 순간〉이 청자에게 건네는 제안이자 선물이다. 돌아보면, 이 앨범에서 내가 찾은 것은 자유 즉흥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낯선 소리와 가까워지는 방법이었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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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슨

출판편집자. 출판사 카라칼을 운영하며 문학과 음악에 관한 책을 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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