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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

2026.SPRING

음악적 DNA를 덮어쓰다

베를린과 서울 사이, 삶과 음악에 관하여

- 슈테판 프리케(Stefan Fricke)와 작곡가 세바스티안 클라렌(Sebastian Claren)의 대담

​글. 오현주

세바스티안 클라렌은 1990년대 베를린에서 발터 짐머만(Walter Zimmermann)을 사사로 작곡을 공부하던 중 한국의 전통 음악을 처음 접했고, 그 즉시 매료되었다. 이후 그는 국악의 배경과 요소들을 깊이 있게 연구해 왔으며,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도 지속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주로 모턴 펠드먼(Morton Feldman)에 관한 연구를 이어온 세바스티안 클라렌은 1965년 독일 만하임 출신의 작곡가 겸 음악학자로, 지난 2021년 서울대학교 작곡과 부교수로 임용되었다. 2024년 4월, 슈테판 프리케는 서울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슈테판 프리케: 세바스티안 클라렌이라는 사람과 한국의 고전 음악 사이에는 오랜 인연이 있죠. 이 음악적 전통이 한국에서 여전히 잘 보존되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에, 당신은 직접 현지에서 연구하고자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고요. 이제 당신은 작곡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서울에 있습니다. 이것은 작곡가님의 예술적 여정과 삶이 아름답게 하나의 원을 그리며 맺음을 지은 느낌일까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예술적인 ‘새로운 열림’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요. 2014년에 한국의 대나무 플루트인 '대금'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순수한 흥미 때문이었지, 작곡가로서 이 악기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기대는 사실 없었습니다.

그런데 2년쯤 지났을 때 제 스승인 대금 연주자 유홍 씨가 저에게 곡을 하나 써줄 수 있냐고 물으셨죠. 솔직히 그때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서, 이 작업이 저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제 작곡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겠다는 걸 비교적 빨리 깨달았죠.

다만, 베를린에서 서울로 이주한 삶의 궤적을 말씀하신 거라면, 생활 면에서 엄청난 변화는 분명 하나, 예술적으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한국의 음악 문화는 전통 음악인 '국악'과 서양 음악으로 꽤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에 양측 사이에는 일종의 '거부감' 같은 것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심지어 제 학생들 대부분은 저보다 국악에 훨씬 덜 관심 있어하죠. 그런 점에서 제가 한국에서 작곡을 가르친다고 하여, 독일에 있을 때보다 한국 전통 음악과 본질적으로 더 가까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슈테판 프리케: 시간을 몇 년 전으로 되돌려보죠. 한국 전통 음악인 ‘국악’을 처음 접했던 순간과 그때 어떤 감정이 촉발되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베를린에서 발터 짐머만(Walter Zimmermann) 교수님 밑에서 작곡을 배우던 시절, 한국인 동기 조정은 씨가 국악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빌려주었습니다. 100% 확실하진 않지만, 신쾌동 명인이 직접 연주한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특유의 음색과 울림, 리듬의 긴장감, 그리고 악기를 다루는 몸짓의 정교함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그 후 몇 년 동안 손에 잡히는 대로 국악 음반을 모조리 사 모았지만, 처음 들었던 그 음악만 한 작품을 찾지 못했죠. 지금에 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실제로는 정말 훌륭한 음반들이 무수히 많지만 한국 밖에서는 대부분 구할 수 없더라고요.

슈테판 프리케: 당시 그 낯선 음악 속에서, 작곡가님의 작업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거나 혹은 반드시 쓰여야만 하는 숨겨진 무언가를 곧바로 직감하셨나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사실,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죠. 2012년 베를린 페스티벌(Berliner Festspiele)의 ‘국제교류 페스티벌(Foreign Affairs-Festival)’에서 이수경 작가의 설치 작품을 배경으로 한 가곡 보컬리스트 박민희 씨의 솔로 공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작가 라이날트 괴츠(Rainald Goetz)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몇 년째 오페라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성악 파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조금은 막막한 상태였죠. 그러던 중 그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고, 첫 순간부터 ‘바로 이거지’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분명 완전히 ‘인위적인’ 가창 기술임에도, 동시에 목소리가 가진 자연스러운 불규칙성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이었죠. 극도의 정교함과 자기 통제로 절제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엄청난 감정적 울림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창법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박민희 씨와 짧게 인사를 나누었고, 다음 날 그녀는 저에게 전통 가곡 레퍼토리가 모두 담긴 본인의 CD를 건네주었죠. 그렇게 우리의 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게는 분명 큰 영향을 준 경험이었죠.

슈테판 프리케: 그래서 그 공연 이후에 직접 한국 악기를 배워보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그 공연을 보고 나서 이 방향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확신은 들었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한국 전통 음악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음악 평론가 마티아스 엔트레스(Mathias Entreß) 씨가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국악 워크숍에 지원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죠.

그렇게 2014년 여름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돌아올 때 한국의 현악기인 가야금을 가져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대금도 구입했죠. 사람은 인생에서 가끔 터무니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또 운이 따를 때가 있죠. 제게는 그때가 아주 운이 좋은 경우였습니다. 대금이 가야금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에, ‘대금을 꼭 배워야겠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대금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한국 전통 기보법인 정간보로만 교육이 이루어지는 몇 안 되는, 어쩌면 유일한 한국 악기입니다. 다른 악기들은 대부분 서양 오선지로 교육되죠. 그러나 제 관점에서 오선지 기보법은 국악을 인식하는 방식을 심각하게 왜곡한다고 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그냥 눈으로 보기에 잘못되어 보인다’라고 할까요? 그 음악이 애초에 서양식 기보법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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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구입한 대금]

슈테판 프리케: 대금을 연주할 때의 신체 자세는 서양 플루트를 연주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겠군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그렇죠. 국악 전체를 통틀어 리듬감 있게 조절되는 비브라토(농음), 그리고 때로는 극도로 빠르면서도 항상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실행되는 꺾는음과 꾸밈음은 그 음악의 결정적인,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대금에서는 이러한 ‘시김새’가 다른 악기보다 훨씬 더 명시적으로 드러나고요.

대금은 악기가 꽤 큰 편이라 서양의 플루트처럼 양손으로 잡지만, 여기에 더해 턱과 어깨 사이에 악기를 단단히 고정해야 합니다. 비브라토나 글리산도(추성·퇴성 등 음을 흘러내리거나 올리는 기법)는 팔꿈치의 움직임으로 제어되는데, 이 움직임이 어깨를 거쳐 악기로 고스란히 전달되죠. 덕분에 아주 미세한 음고의 변화까지 절대적인 정밀도로 구현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팔꿈치는 음악을 그려내는 붓과도 같죠. 이는 서양 플루트를 연주할 때와는 신체적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꾸밈음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도 다르고요. 한국 음악에서 꾸밈음은 명확하게 정의된, 매우 신체적인 제스처입니다. 또한 비브라토는 음색이 아닌, 정교하게 짜맞춰진 리듬적 요소로,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음을 끊어내어 일종의 공격적인 트레몰로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죠. 극단적인 경우에는 비브라토를 통해 음이 마치 리드미컬하게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두 전통 사이에서 새로운 음악을 쓰다

슈테판 프리케한국의 악기와 그 음색, 음체계, 연주법 외에도 작곡가님은 한국의 성악과 그 가능성에 깊은 관심을 두고 계시는데요. 국악에서의 가창은 서양의 전통 가창과 어떻게 다른가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앞서 가곡과 관련해서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서양의 성악 전통에서는 모든 음역에서 목소리를 균일하게 내는 것, 이른바 ‘성구 융합’에 확실하게 초점을 맞춥니다. 나아가 가창자 간의 음색적 차이도 어느 정도는 통일감을 주려고 하죠. 반면 국악은 성구와 목소리의 고유한 '차이점'을 오히려 부각하는 데 더 관심을 둡니다.

예를 들자면, 여창 가곡에는 ‘속소리’와 ‘겉소리’가 있는데, 이는 대략 서양 성악에서 가성과 진성에 해당하죠. 그런데 이 두 소리의 배치는 가창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그 음악에 명확히 지정된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성대가 전환될 때 일종의 '툭' 하는 꺾이는 소리가 나기도 하는데, 이 소리마저도 그 곡의 엄연한 한 요소이고요.

민속 음악에서 발전한 서사적 가창 장르인 판소리의 경우, 소리꾼들은 평생에 걸쳐 가능한 수많은 다양한 음색을 익히고 이를 언제든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도록 훈련합니다. 이러한 점은 이 장르에 있어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요소이죠.

슈테판 프리케예전의 또 다른 대화에서, 국악을 연구하면서 오히려 서양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아동기와 청소년기 시절 기악 연주자로서 꽤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가족들도 내심 제가 클라리넷 연주자가 되기를 기대했죠. 저를 가르친 게오르크 마르톤(Georg Marton) 선생님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클라리넷 연주자 출신으로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특히 리드미컬한 프레이징을 매우 강조하셨죠.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훈련은 제 몸에 고스란히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제 작품을 쓸 때도 늘 그 감각을 바탕으로 작곡하고 모니터링했죠. 비록 제삼자가 제 악보를 볼 때는 쉽게 알아채지 못하겠지만요.

그러다 대금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 태도들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의 집중적인 연습을 통해 길러진 것임을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대금 스승인 유홍 씨는 옛 클라리넷 스승만큼이나 엄격하셨는데, 초기에 제가 내는 거의 모든 음에 “그건 한국적인 소리가 아닙니다.”라고 했죠. 프레이징, 음색, 리듬, 비브라토, 꾸밈음 등 제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서양 음악과 국악 사이의 이러한 상반되는 특성이 아주 극명하게 다가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에게도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지금은 예전만큼 이분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배우는 과정 자체는 정말이지 제 음악적 DNA가 덮어 쓰이는 듯한 기분이었죠.

슈테판 프리케이러한 새로운 상황(변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시나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마음에 듭니다. 덕분에 예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일종의 ‘자유’를 찾게 되었으니까요. 예전 제 음악에서는 (다분히 무의식적이었지만) 저 스스로를 서양 음악 전통의 일부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늘 제 음악을 일종의 ‘원점’에서부터 정의해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죠. 서양 음악의 고전적인 재료를 완전히 배제하거나, 극도로 축소된 기본 요소들로부터 다시 재구성해내야만 그런 지점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어떤 한 전통의 일부라기보다는, 두 문화 사이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동안은 오히려 서양 음악이 국악보다 더 멀게 느껴지기도 했죠. 지금은 그보다 제가 ‘바로 지금 작업하고 있는 곡’에 가장 친밀함을 느낍니다. 서로 다른 음악 문화를 다루는 방식이 아주 자연스러워진 셈이죠.

슈테판 프리케: 서양 악기를 위해 곡을 쓰는 일이 전보다는 더 어려워졌나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더 쉬워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예전 악보들을 보면, 애초부터 음 하나하나를 흔들고, 그 자체로 구조화하거나, 깨뜨리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것도 종종 아주 과감하게 말이죠. 당시에는 국악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게, 음악적 소재 자체에서 발전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토대는 제게 국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죠.

실제로 한국 악기를 위한 첫 작품들을 쓰고 난 직후, 서양 악기에 곧바로 적용해 보았는데요. 제가 발견한 기법 중 일부인, 예를 들면 리듬적으로 상세히 받아 적은 비브라토 같은 것 말이죠. 그러나 똑같을 수는 없고, 소리도 다르게 납니다. 서양 음악가들은 다른 교육 배경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나의 ‘전이’ 과정으로써 매우 효과적입니다.

슈테판 프리케: 한국 전통에서 귀로 익힌 것, 그리고 그 전통으로부터 생산적으로 얻어낸 것들이 작곡가님의 음악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고 있나요? 악기 편성면에서는 쉽게 알아볼 수 있겠지만, 이른바 ‘미학적 삼투 현상’이 선생님의 작곡에서 구조적·드라마투르기적으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합니다.

세바스티안 클라렌: 드라마투르기 측면에서 보면, 제 음악은 사실 국악과 아무런 관련이 없죠. 하지만 ‘소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것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 음악은 반복과 변주에서 생명력을 얻죠. 국악에는 이러한 방식이 존재하진 않습니다. 또한 제 음악은 명확한 구조와 뚜렷한 드라마투르기적 전개를 바탕으로 흘러가죠. 이 역시 한국 음악에서는 오히려 기피하는 요소들이죠. 이러한 측면으로 보면, 거의 ‘가장 극단적인 대조’라고 불러도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소재의 측면으로 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죠. 제가 지금까지 국악기를 위해 쓴 곡들은 모두 특정 전통 음악의 구체적인 요소로 직접 발전시킨 것들인데요. 2016년에 작곡한 대금 독주곡 <Today, I Wrote Nothing (Vol. 1)>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 곡은 100% <서용석류 대금산조>의 소재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 제가 배우고 있던 곡이기도 했습니다. 서용석 명인은 제 대금 스승인 유홍 연주자의 스승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대금 연주자 중 한 분이시죠.

제게 있어서 그분의 대금 산조는 여러 세대에 걸쳐 발전해 온 전통 장르가 음악적 구조와 연주 기법 면에서 차별화를 이루는, 하나의 극도로 탁월한 예술적 모범입니다. 매우 관용적이면서도 동시에 초개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죠. 작곡된 음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한 개인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차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이 음악에서 드러나는 개별적인 몸짓들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 악기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천재적인 표현들이라고 보았죠.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기에 청중의 입장에서 보다는 연주자로서가 이를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제스처들을 하나씩 추려내, 긴 변형의 과정을 거쳐 일종의 샘플링을 했죠. 어떤 면에서는 그 시간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스스로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저에게 놀라웠던 점은 이를 통해 그 소재가 전혀 다른 본질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 쓰인 것이죠. 원형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된 겁니다. 원래 존재하던 소재가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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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Today, I Wrote Nothing (Vol. 1)> 공연 - 연주자 유홍]

슈테판 프리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 위해, 기존에 선택한 소재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시는군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그것이 지금까지도 한국 전통 음악을 다루는 저의 가장 핵심적인 전략입니다. 물론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판소리 소리꾼과 네 대의 국악기를 위해 2019년에 쓴 <endless summer>이라는 곡은 <문묘제례악>을 바탕으로 하는데요. 오늘날까지 원형 그대로 연주되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의례 음악이죠. 이 곡은 다분히 미니멀리즘적인 작품입니다. 여기서 특유의 특징적인 몸짓, 즉 박자감이 돋보이는 비브라토(농음)와 짧고 빠르게 위로 끌어올리는 글리산도(추성) 기법을 추려내어, 이를 다양한 악기 조합과 음정 조합에 적용해 보았죠. 그리고 그 위로 제가 직접 쓴 메모글을 조합해 한국어로 번역한, 꽤 기이한 텍스트를 얹었고요. 소리꾼은 그 글을 낭독하듯 읊조리다, 때때로 원곡의 유교 경전 텍스트가 붙은 개별 음절들을 노래하며 중간중간 끊어냅니다.

당시 제 구상은 소리꾼이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문득 자신이 원래 문묘제례악을 노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소절 부르지만, 이내 곧바로 다시 자신만의 생각의 흐름으로 빠져드는 것이었죠. 이 곡은 서울의 현대음악 앙상블 ‘왓와이아트(WhatWhy Art)’의 연출형 콘서트를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각 악장들은 공연 중에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 사이에 배치되어, 그날 밤의 공연을 기발한 방식으로 이끌어 가는 ‘사회자’ 역할을 하도록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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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endless summer> 국악방송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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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endless summer> 리허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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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endless summer>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연 - 이나래]

전통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다

슈테판 프리케: 그렇다면 2020년에 작곡하신 거문고 독주곡 <both of them have lovers>는 어떤가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이 곡은 대금 독주곡인 <Today, I Wrote Nothing (Vol. 1)>과 짝을 이루는 작품으로,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예전 한국인 동기가 빌려주었던 바로 그 테이프 속 음악일 겁니다.
거문고는 대나무 술대로 줄을 내리쳐서 소리를 내는 일종의 베이스 현악기인데, 매우 묵직한 음색과 함께 가장 한국적인 악기로 꼽힙니다. <서용석류 대금산조> 때와는 달리, 저는 거문고를 직접 연주할 줄도 몰랐기에 기법의 미세한 차이까지 디테일하게 이해할 방법도 없었죠. 그래서 신쾌동 명인의 오리지널 음원을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채보하기로 결심했고, 그 채보한 악보를 작곡의 소재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거문고 연주자들과 달리, 신쾌동 명인은 표현력이 풍부한 거장이었습니다. 템포를 거의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극한으로 끌어올렸으며, 거문고가 가진 고유의 독특한 음색을 아주 섬세한 영역부터 거칠고 격렬한 영역까지, 그 악기로 도달할 수 있는 선까지 밀어붙였죠.
저는 이 모든 측면을 제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Today, I Wrote Nothing (Vol. 1)>에서 소재를 각 사방에서 끊임없이 조명하며 긴 호흡으로 극한까지 끌어올려 보기로 했죠. 그 결과 연주 시간이 총 40분을 넘어가는 곡으로 완성되었죠.
참고로 이 곡은 제가 국악기를 위해 쓴 작품 중, 전통 음악에서 유래하지 않은 연주 기법을 적용한 유일한 곡이기도 합니다. 당시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거문고를 대여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는데요, 제 마음에 들면서도 악기를 지나치게 서구화하지 않고 거문고 본연의 캐릭터를 해치지 않는 기법들을 골라 곡에 반영했습니다. 이렇게 긴 곡에서는 전통 악기에서 나오는 특유의 아우라를 가끔씩 깨뜨려 주어야, 그 음악이 소위, 바깥세상을 향해 열릴 수 있다고 느꼈죠. 

슈테판 프리케: 작곡가님 악보에 서양식 기보법과는 굉장히 다른 한국 전통 기보법의 요소를 차용하기도 하나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Today, I Wrote Nothing (Vol. 1)>에서는 서양식 오선보 위에 한자로 된 국악의 음 이름인 율명을 함께 적어 넣었죠. 2023년 대금을 위한 곡 <GOLD/HURT>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대금은 같은 음 높이라도 서로 다른 운지법으로 연주할 수 있고, 반대로 같은 운지법으로도 다른 담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표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연주자가 음의 흐름을 정확히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돕는 본질적인 정보인 셈이죠.
또한, 제게는 음악을 서양식 오선보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음악은 ‘한국 전통 음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통 기보법에서는 음 이름 옆에 일종의 부호로만 표시되던 꾸밈음과 시김새들이 오선보 위 아주 미세하고 정밀하게 기입되어 있으면, 연주자는 바로 음악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죠. 
여기에는 제게 일종의 강박적인 면모로도 전제되어 있겠죠. 저는 연주자뿐만 아니라 가급적 청중에게도 그 음악 안에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거든요. 한국의 전통 기보법은 복잡한 음악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기록하는 데 아주 탁월합니다. 반면, 제 악보는 이러한 복잡성을 의식하게 만들고 표현해내려 하고요. 일종의 ‘음악을 찍은 사진’과 같다고 볼 수 있겠죠.

[사진 6: <GOLD/HURT> 공연 - 연주자 유홍]

슈테판 프리케: 작곡가님의 한국 ‘차용’ 곡으로 가장 방대하게 다뤄진 작품은 2021/22년에 완성된 성악과 네 대의 국악기를 위한 <가곡바운스: 하나씩 하나씩 (Gagokbounce: One By One)>이죠. 이 곡은 1년 뒤 현대음악 전문 레이블 카이로스(Kairos)를 통해 음반으로도 발매되었고요. 여기서는 한국 문화의 여러 영역이 융합되어 나타납니다. 특히 유럽(독일) 지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터미디어 아티스트 차학경의 텍스트를 사용한 점이 눈에 띕니다. 12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한 이 작가는 1982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뉴욕에서 피살당한 비운의 예술가이기도 한데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이 곡은 정가 보컬리스트 박민희 씨를 처음 만난 지 10년 만에 마침내 결실을 본 작품입니다. 저는 그와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고, 몇 년간 계속해서 보면서 그녀의 수많은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박민희 씨는 전통적인 현대 음악도 많이 노래해 왔지만, 국제적인 스타일에 맞추고 거기에 한국적 요소를 약간 더하는 식으로는 그녀가 가진 가창 기법의 특별함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상한 대로 그 목소리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전통 가곡 스타일에 아주 가깝게 가야만 했죠. 
원래 모든 전통 가곡은 한국 시가 중 가장 고전적인 형식인 시조 텍스트를 바탕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전 그런 형식을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죠. 역사적 재구성이 아닌 동시대적인 느낌을 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018년 차학경 작가의 영상 작품들로 이뤄진 소규모 전시가 열렸습니다. 또,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접하게 된 거죠. 차학경 작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이 작가는 의심할 여지없이 1970년대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이죠.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인 『딕테(Dictée)』(1982)에서 발화(말하기)와 언어의 형성에 관한 짧은 시적인 텍스트를 발견했고, 그 글이 전통 가곡을 소재로 한 <가곡바운스: 하나씩 하나씩 (Gagokbounce: One By One)>의 토대가 된 겁니다.

[사진 7: <가곡바운스: 하나씩 하나씩 (Gagokbounce: One By One)> 공연 - 연주자: 박민희 유홍, 김웅식]

슈테판 프리케: 75분에 달하는 그 방대한 분량의 <가곡바운스: 하나씩 하나씩 (Gagokbounce: One By One)> 작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었나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서울대학교에 부임하게 되면 꽤 큰 규모로 지원되는 ‘신임교수 연구정착금(New Faculty Fund)’을 신청할 수 있는데요.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데 그 연구비를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희는 전통 가곡의 성악 파트와 기악 파트를 각각 따로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그 녹음본을 아주 세밀하게 채보하여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았죠. 여기서도 제가 다시 한번 중점을 둔 부분은, 연주자들이 그들의 연주 관행의 일부라는 사실조차 전혀 모를 수도 있는 디테일을 포착하는 것이었죠. 또한 이를 나머지 음악적 소재들과 완벽하게 녹여내, 어쩌면 그것을 훨씬 더 도드라지게 부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극도로 복잡한 악보가 완성된 거죠. 솔직히 연주가 가능은 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 까다로운 음악을 연습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고, 지난 2022년 국립극장에서 성공적인 초연을 마쳐준 박민희 씨와 앙상블 ‘왓와이아트(WhatWhy Art)’ 연주자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박민희 씨는 이제 다른 커리어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고, 2025년 ‘빈 모던(Wien Modern)’ 공연에서는 젊은 정가 보컬리스트 조윤영 씨가 이 파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슈테판 프리케: 한국의 고전 전통 음악과 세바스티안 클라렌의 새로운 음악 사이, 그 차이점을 조금만 더 명확하게 짚어주실 수 있을까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가곡바운스: 하나씩 하나씩>을 예로 들면 아마 가장 잘 설명될 것 같습니다. 이 곡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전통적인 본래의 소재에 가장 가깝게 구현되었기 때문인데요.
첫 번째로는, 한국의 전통 음악은 언제나 규칙적인 박자를 바탕으로 흘러가지만, 제 음악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가곡바운스: 하나씩 하나씩>에 등장하는 불규칙한 변박은 음악의 규칙적인 흐름을 깨기 위해 종종 매우 복잡하면서도 예측이 불가능하죠.
두 번째, 한국 음악은 개별 구절과 모티브가 상호 유기적으로 맞물려 이어지면서 항상 ‘자연스럽게 발전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저는 제 음악에서 이를 매번 배제하거나, 적어도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싶은데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세한 디테일들이 유기적인 흐름 속에서는 사라질 것 같아서겠죠.
그리고 세 번째로, 저는 모든 디테일을 ‘악보에 온전히 받아 적는 것’ 자체가 그 본질에 근본적인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가곡바운스: 하나씩 하나씩>을 작업할 당시 악보, 특히 성악 파트가 워낙 복잡해졌기에 제 스스로도 가끔 경악했을 정도였죠. 박민희 씨에게 이 악보를 보여줘야 할 그 순간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전통을 따라 몸에 익은 꾸밈음을 정해진 타이밍에 연주하는 것과, 악보에 복잡하게 기보 된 꾸밈음을 노래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죠. 여기서 생겨나는 ‘인위성’, 즉 당연하게 흘러가지 않는 낯섦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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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프리케: 작곡가님께서 한국 문화의 전통 음악을 이토록 깊이 연구하고, 이를 당신의 음악적 자양분으로 삼는 것에 대해 한국의 음악가들은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나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제 생각에는 조금 신기해하는 것 같습니다. 국악을 전공한 작곡가들을 포함해서, 한국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방식이 그리 흔치 않은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자신들의 한국 음악을 이토록 진지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드디어 자신들의 음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그분들께 직접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저 곁다리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죠. 

[사진 7: <가곡바운스: 하나씩 하나씩 (Gagokbounce: One By One)> 악보]

슈테판 프리케: 아무리 가능한 한 정확하게 배우고 이해하려는 진지한 태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타자의 것’을 작곡가님의 음악에 통합하거나 혹은 그것을 통해 본인 고유의 것을 다지는 작업에 대해 스스로 어떤 망설임이나 가책을 가끔 느끼진 않으시나요?

세바스티안 클라렌: 저는 그렇게 느끼진 않습니다. 설령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도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저는 제 음악을 더 풍요롭게 만들거나, 그것에 무언가를 통합하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건 정말로 중요하기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느낌에 더 가깝죠. 무언가를 보존하거나 복원해야 한다는 뜻에서가 아닌, 이것이 저에겐 진정으로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특정 소재를 가지고 내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그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훌륭하고 흥미로운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죠. 물론 이건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든 자신의 개인 사고방식(Mindset)을 필연적으로 투영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건 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닙니다.
또한, 제가 국악을 접하며 자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음악이 저에게 ‘낯선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저에게 모차르트나 베토벤 혹은 베베른에 더 친숙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그 음악과 자랐다는 이유만으로요? 아니면 같은 문화권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요? 제가 자란 문화권은 모차르트, 베토벤, 베베른이 자라난 곳과 과연 같은 곳일까요? 전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무언가가 나에게 익숙하다는 것이 과연 지향해야 할 자세일까요? 친숙함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해 주나요? 오히려 정반대일지도 모르죠. 그것은 어쩌면 애초에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예술적으로 가장 지루한 포지션일 것입니다.

사진

세바스티안 클라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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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본 대담은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마인츠: Schott Musik 발행) 2024년 제3호에 축약본으로 처음 게재되었으며, 오리지널 버전은 2025년 《빈 모던(Wien Modern) 38》 페스티벌 카탈로그 제2권, 187~195쪽에 수록되었다.

인터뷰어: 슈테판 프리케(Stefan Fricke)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위치한 헤센 방송국(Hessischer Rundfunk)의 현대음악 및 사운드아트 부문 편집장이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 대학교 음악대학에서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4년부터는 모니카 포이트호퍼(Monika Voithofer)와 함께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의 공동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현대음악 전문 매거진 《뮤직텍스테(musiktexte.online)》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번역: 오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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