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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

2026.SPRING

작곡과 연주의 최전선

: 전통악기 연주자와의 창조적 협업

​글. 하라다 게이코

* 이 글에서는 필자가 시도해 온 전통악기 연주자들과의 창조적 협업과, 지역성이 강한 음악문화의 계승 현장을 대상으로 한 필드 리서치를 통해 얻은 경험과 성과를 살펴본다.

먼저 필자의 음악적 이력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는 네 살 무렵, 예능 교육의 일환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피아노 즉흥연주에 몰두하면서 열 살이 될 무렵에는 몇 곡의 피아노곡과 음악극의 노래 및 극중음악을 작곡했고, 이를 직접 연주하거나 다른 이들과 함께 무대에서 발표했다. 이후 일반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한편, 사설 음악교실과 개인 레슨을 통해 피아노와 음악이론, 작곡이론 등을 배운 뒤 일본의 음악대학에 진학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약 1년 전인 1988년,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처음 유럽으로 건너가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 여름강좌에 참가했다. 만약 당시 이 기회를 놓쳤다면 오늘날 작곡가로서의 필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20세기 이후 유럽 음악을 실제 공연으로 접할 기회가 드물었다. 다름슈타트에서 필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작곡가와 연주자, 음악학자, 방송 관계자, 음악 축제 프로듀서 등을 만났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10대 후반, 특히 파리 음악원 등의 학생들부터 80대까지 매우 다양했다. 일본과 전혀 달랐던 것은 유럽과 미국의 현대음악 작품 자체의 내용, 연주의 수준, 그리고 악기의 울림이었다. 우선 작품의 내용은 필자의 뇌와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만큼 충격적으로 자유로운 발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리허설에서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서로 달려들 듯 논쟁하고, 눈앞의 작곡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작업을 진행했다. 약 17일 동안 매일같이 세미나와 연주회를 접하는 자극적인 나날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은 CD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리와 실제 연주에서 들리는 소리가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었다. 안톤 베베른, 헬무트 라헨만, 이아니스 크세나키스의 작품은 마치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변화하는 소리의 건축물처럼 들렸다. CD로는 공간적인 소리의 경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빛과 공기가 만화경처럼 소리의 안팎에서 반사되는 듯했다. 그것은 필자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베베른과는 달랐다. 풍부하고 강렬한 음악의 파동 속에서, 잠들어 있던 필자의 감각이 공명하기 시작하는 듯했다. 불과 17일 만에 필자의 귀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른바 ‘다름슈타트 쇼크’ 직후부터 약 한 달 동안 필자는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습기’였다. 일본에 이렇게 습기가 많았던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몸의 감각을 통해 인식한 순간이었다. 그렇다. 소리와 울림은 습도와 기압, 자연환경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그날 필자의 귀는 바이링구얼,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귀가 되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필자는 일본의 전통음악이나 가가쿠 악기는 물론, 동아시아 전통악기에 대해서도 아무런 소양이나 관심이 없었다. 그저 유럽 전통악기의 위력에 압도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음악대학 시절 필자의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인 마미야 미치오(間宮芳生)는 특히 일본 민요와 전통악기에 주목해 작곡하고 있었다. 그래서 머릿속 아주 먼 한편에서는 때때로 ‘일본의 전통악기라니,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데…’라고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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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음악 여름강좌에서.

앞서 언급했듯이 필자에게 최초의 전통음악이자 전통악기는 어린 시절부터 접한 피아노였으며, 20대 중반까지도 음악적 기반은 서양 음악예술에 있었다. 그러나 인연이 멀게만 느껴졌던 일본 전통악기와의 첫 본격적인 만남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1994년(26세), 일본 전통악기와 서양 타악기를 결합한 삼중주 작품을 위촉받은 것이다. 이때 전통악기 연주자와의 작업 과정에서 받은 강한 충격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이후 일본 전통악기를 사용한 작품은 다음 위촉작인 1998년의 첼로와 사쓰마 비파를 위한 작품이 될 때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전통악기를 위한 작곡 의뢰가 꾸준히 이어졌다. 필자는 일본의 고토(箏), 쇼(笙), 샤미센, 샤쿠하치, 노가쿠의 오쓰즈미(大鼓), 일본 전통 타악기, 산신(三線) 등 거의 모든 일본 전통악기를 활용한 독주곡부터 중규모 편성의 작품까지 발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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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러한 악기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서양 악기와는 다르다’는 정도의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다시 말해, 필자에게 전통악기는 한동안 ‘음향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으며, 일본 전통음악과 가가쿠, 노가쿠 특유의 울림을 서양식 악보 체계로 기록하는 데 그쳤다.흥미로운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유럽에서 작품이 자주 연주되기 시작하면서 현지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양에는 없는 울림”, “일본적인 무언가를 의식하며 작곡한 것인가?”, “서양에는 없는 음악적 시간”, “서양에는 없는 음악의 에너지”, “경계가 없는 음악”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내 안에 무의식적인 일본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일본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같은 소박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창작 활동으로 인해 이러한 질문을 깊이 탐구하는 일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피아노 협주곡(2013–2015) 세계 초연 리허설.

도호가쿠엔 음악대학에서, 독주자 메구로 유미코 교수와 함께.

여기서 잠시 시선을 돌려, 지난 약 100년 동안 일본 작곡가들이 전통악기를 위한 창작에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해 왔는지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서양 예술음악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음악임을 증명하려는 의도에서 전통음악을 서양식 악보로 표기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까지도 서양 악보를 완벽하게 읽고 연주할 수 있는 전통악기 연주자가 많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는 악기의 개량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악기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온 반면,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악기를 거의 원형 그대로 소중히 계승해 왔다. 이러한 차이는 양국의 정신문화가 지닌 성향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일본 작곡가들의 전통악기 접근 방식으로 돌아가 보면,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 가운데 하나는 다케미쓰 도루의 《November Steps》(1967)이다. 이 작품은 샤쿠하치와 사쓰마 비파를 독주 악기로 내세워 서양 오케스트라 앞에 배치하였다. 지휘자의 편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샤쿠하치와 비파의 파트는 오선보로 기보되어 있으면서도 음가는 지정되어 있지 않으며, 카덴차 부분은 그래픽 악보로 제시되어 있다. 다케미쓰는 전통악기 연주자들이 어떻게 소리를 듣고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 즉 그들의 신체성과 음악적 감각에 주목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서양 음악의 솔페주 교육(solfège, 악보를 보고 정확한 음높이·리듬·음정을 읽고 노래하는 기초 음악훈련)을 받은 일본 전통악기 연주자가 거의 없었다. 그는 이러한 ‘전통의 신체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음악 내용뿐 아니라 기보 방식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했다. 서양 음악의 방법론에 전통악기를 종속시키거나 단순히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악기들이 각자의 개성을 유지한 채 공존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케미쓰 역시 “비파와 샤쿠하치가 보여주는 이질적인 음의 영역을 오케스트라와 대치시킴으로써 그 특성을 더욱 부각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밖에도 많은 일본 작곡가들은 노, 가부키, 민요, 하이쿠, 서예, 꽃꽂이, 건축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나 지역색이 짙은 민요와 민속예능을 소재로 작품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특히 전자의 경우, 즉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가운데 상당수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문화이다. 그렇다면 일본 작곡가들은 이러한 전통문화를 과연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일본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강조한다’는 태도는 서양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서양과 동양을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무의식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서양을 의식하거나 서양의 요구를 계기로 이루어진 창작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는 젊은 시절의 스트라빈스키가 파리의 청중으로부터 러시아적인 음악을 강하게 기대받았고, 어쩌면 요구받기까지 했던 상황과도 닮아 있다. 본래 음악은 다양하고 자유로운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이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적인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외부의 요구는 과연 어디까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한편, 전통악기와의 관계를 이어가던 중, 필자는 ‘일본이란 무엇인가’, ‘전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2012년). 일본 문화청의 파견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에서 연수를 받던 중, 현재 국제적으로 뛰어난 고토(箏) 연주자로 알려진 기쿠치 나오코(菊地奈緒子)의 권유로 한국·중국·일본의 전통악기와 서양의 현악기·타악기로 구성된 AsianArt Ensemble(베를린)의 워크숍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 필자는 일본 혼슈 최남서단에 위치한 가고시마현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지역성이 매우 강한 전통 음문화와도 만나게 되었다.
먼저 베를린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그곳에서 필자는 현대음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동아시아 전통악기 연주자들을 만났다. 앞서 언급한 고토 연주자 기쿠치 나오코를 비롯해 중국 생(笙) 연주자 우웨이(Wu Wei), 한국의 대금 연주자 유홍(Hong Yoo), 작곡가이자 AsianArt Ensemble을 이끄는 정일련(II-Ryun Chung), 그리고 서양 현악기와 타악기를 연주하는 단원들까지 모두가 뛰어난 음악성과 강한 창작 의지를 지닌 음악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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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베를린. AsianArt Ensemble의 동료들과 함께. (왼쪽부터 유홍, 정일련)

AsianArt Ensemble에 흐르는 창조적 정신은 특별했다. 이들은 매년 작곡가를 위한 국제 워크숍을 개최하며 꾸준히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경력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작곡가를 진지하게 대하며, 자신들의 악기를 위한 진정으로 수준 높은 새로운 작품을 찾으려는 태도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자세는 필자의 창작 의욕을 크게 자극했고, 오랫동안 창작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과 함께했던 풍요로운 협업과 초연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며, 지금도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최근 상황을 덧붙이자면, 현재는 중국과 일본의 전통악기 연주자들이 예전처럼 상시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중국·일본의 전통악기와 서양의 현악기·타악기가 함께하는 이러한 독창적인 편성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성격의 앙상블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같은 해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연구가 있다. 바로 지역성이 강한 전통 음문화, 특히 그 계승 과정의 역동성에 관한 연구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필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유럽에서 자신의 작품이 연주될 때마다 청중으로부터 받은 반응을 계기로 ‘일본적이란 무엇인가’, ‘전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일본’이라는 거대한 범주가 아니라 가고시마현이라는 한정된 지역의 음문화(언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음문화’라고 부른다)를 접하면서, 일본이라는 존재는 마치 수많은 조각이 모여 완성된 직소퍼즐과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즉, 더 작은 지역의 음문화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지역마다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차이는 방언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그리고 그 차이 속에는 각 지역에 뿌리내린 고유한 정신문화가 담겨 있으며, 그것이 음문화라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필자의 관심은 물론 전통 음문화 자체의 높은 예술성과, 계승자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연주의 질에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는 왜 이러한 문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는지, 무엇이 변화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은 채 지켜져 왔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바로 그 과정 속에 ‘일본적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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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진 선행연구는 일본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연구 방법 역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현재 필자는 지역성이 강한 음문화의 계승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음성 및 영상 기록을 축적하고 있다. 방송사에서도 개별적인 기록은 남기고 있지만, 그러한 기록만으로는 오랜 시간에 걸친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필자가 직접 장기적인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가고시마 본토에서는 약 14년, 같은 현의 도서 지역인 아마미 제도 북부에서는 10년째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각 지역의 음문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곡도 독주곡부터 소규모 오케스트라 작품까지 약 10편 정도 발표하였다.

2017년, 아마미 제도 기카이섬. 아마미와 오키나와의 전통 현악기 산신(뱀가죽을 사용하는 삼현악기)의 차이를 연구하기 위한 첫 현지조사.

이러한 창작 활동을 두고 흔히 작곡가가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일본적이란 무엇인가’,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었으며, 작곡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오히려 계승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대화 속에서 “우리 음악을 바탕으로 작품을 한 곡 써 줄 수 없겠느냐”는 요청을 받은 것이 창작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오직 귀로 익혀 전승해 온 계승자들의 노래는 놀라울 만큼 뛰어나다. 때로는 서양 성악가의 노래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음악을 접하면서 작곡가인 필자의 창작 의욕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고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일본가곡」이라고 클래식 음악계에서 부르는 장르에 대해 큰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일본어를 서양 성악의 발성법으로 노래한 결과, 정작 일본어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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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니가타현과 사도섬에서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작곡한 일본 타악기 앙상블 작품 《ONI》 일본 투어 중. (연주자 7명과 사전 녹음된 음성으로 구성)

이제 글을 맺을 때가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오늘날 뛰어난 기량을 갖춘 한국·중국·일본의 중견 및 젊은 전통악기 연주자들의 소리는 점점 더 ‘아름답게’ 변하고 있다. 이는 곧 서양의 음률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중국의 전통악기인 마두금(馬頭琴)은 이제 첼로와 무엇이 다른가를 묻는다면, 거의 외형과 음역 정도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마두금은 첼로가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 샤쿠하치는 베이스 플루트가 되고 싶은 것일까? 본래 악기가 지니고 있던 고유한 울림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작곡가가 ‘미분음’이나 ‘공기가 섞인 소리’를 악보에 따로 지정하는, 다소 역설적인 방식으로 옛 울림을 재현하려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역성이 강한 문화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다. 일본 각지의 민요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계승자들의 연주 기량은 눈부실 만큼 뛰어나지만, 음정은 점점 서양 음악에 가까워지고 소리는 더욱 정제된다. 그와 동시에 흙냄새 같은 투박한 정서와 지역만의 고유한 색채는 생활환경의 변화와 함께 점차 사라져 간다. 이 문제에 대해 전통을 계승하는 분들이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전통이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사례는 가고시마 전통인 사쓰마 비파의 계승이다. 그 계승자들은 시작된 이래 거의 변하지 않은 약 500년의 전통을 지금까지도 굳건히 지켜 오고 있다. 이러한 지속성을 가능하게 한 정신문화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1998년, 요요 마(첼로)와 우에다 준코(도쿄파 사쓰마 비파)를 위한 위촉작 작업. 시즈오카시 콘서트홀 AOI 위촉.

앞으로도 탐구는 계속될 것이다. 필자는 40대가 되기 전까지는 깊이 알 기회조차 없었던, 어쩌면 자신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던 전통문화의 계승자들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접 관계를 맺어 왔다. 그 과정에서 창작과 연구라는 두 축은 서로를 지탱하며, 일본과 동아시아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한층 깊게 해 주었다. 이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앞으로 필자의 창작이 어디를 향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언제나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와 열린 마음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를 배우려는 태도만은 계속 간직하고 싶다. 알면 알수록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창작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새롭고도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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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게이코(HARADA, Keiko)原田 敬子

작곡가. 도쿄음악대학 작곡과 교수, 가고시마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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