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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2024.autumn

전통의
동시성과 비동시성

공연 <조 도깨비 영숙>& 음반 [lull~유영]

글. 김연주

조 도깨비 영숙_Sync Next24 (1)_BW.png

예술은 인간을 질문하고 궁리하게 하며 감각과 감정의 자극을 통해 돌아보고 나아가게 한다. 그렇다면 예술의 가치는 언제 더욱 빛이 날까. 나의 삶, 내가 속한 오늘의 사회와 연결됨을 느낄 때, 예술을 통해 지금의 삶과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질 거라 희망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그렇다면, ‘동시대성’이라는 용어는 예술의 존재, 예술이라는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과 그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장 선명하게 연결하는 핵심적 요소라 말할 수 있을까. ‘동시대성’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주로 예술 작품에 대하여) 1. 현재의 사회가 나타내는 특유한 성격이나 성질을 반영하는 특성, 2. 그 작품이 속한 장르의 작품들이 현재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공유하는 성질, 3. 현재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정한 시기의 사회가 나타내는 특유한 성격이나 성질을 공유하는 특성이다.

 

‘동시대성’은 어떻게 발현되고 관객들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특히 전통예술계에서 ‘동시대성’을 다루는 것은 만드는 이와 받아들이는 이 모두에게 매우 까다로운 일일 것이다. 전통은 시간의 산물인 동시에 시간을 초월한다. 잔존하는 전 세대의 것, 당대의 문화, 취향 등이 혼합되고 다양한 변종이 생멸하면서 다중적 동시대성을 내포하게 되는데, 전통예술에서 발생하는/발생시키는 ‘동시대성’, ‘동시대화 과정’에서 ‘비동시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동시성’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시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나 성질이 아닌 것. (특히 전통예술을 근간으로 하는 작업에서) 동시대에 형성되지 아니한 것을 동시대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질감, 혹은 미묘한 불편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태생적 아이러니에서 집단과 개인을 막론한 문화적, 정서적, 표현적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균열을 ‘비동시성’, 다르게 표현하면 ‘다양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전통 근간의 작업에서 동시대성은 비동시성 기반의 것이며 그 다중성과 이질성에 있어 어떤 관점과 태도, 방법을 취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예술가에게 ‘창의적 계승’과 같은 전통적 슬로건을 획일적으로 대입하며 방법론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과정에서 작업자의 주체성과 예술적 논리, 작품의 완성도가 수반된다면 ‘동시대성’이라는 가치는 자연스럽게 획득되지 않을까.

 

이러한 점에서 올해 발표된 두 작품을 언급하고 싶다. 지난 7월, 세종문화회관 ‘Sync Next 24’에서 발표된 공연 <조 도깨비 영숙>, 그리고 아티스트 콜렉티브 ‘Modular Seoul(모듈라서울)’이 5월에 발표한 앨범 [lull~유영]이다. 두 작품의 표면적 공통점은, 오늘날 대중과의 접점이 거의 없는 전통예술 장르, 여성국극과 불교 의식음악인 범패(梵唄)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여성국극의 원로 조영숙 명인과 조계종 어산어장(魚山魚丈) 인묵스님을 중심에 두고 창작자로서의 개성, 작품의 방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전통을 소재로 한 이 두 작품은 전통의 동시대성을 질문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1) 조영숙 명인(1934년생)은 1951년 여성국극동지사에 입단한 이후 햇님국극단 등에서 활동한 여성국극 1세대로 어린 시절부터 노래와 춤, 연기뿐 아니라 공부와 운동에도 재능을 보여 ‘도깨비’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2) 인묵스님은 국가무형유산 영산재 보유자였던 부친 일응스님을 사사하였다. 불교의식과 범패의 원형을 이어가는 동시에 다양한 예술가와의 교류 및 협업을 통해 범패의 종교적, 음악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 Sync Next 24 조영숙×장영규×박민희 <조 도깨비 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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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 넥스트는 세종문화회관이 2022년부터 마련하고 있는 컨템포러리 예술 축제이다. 음악, 시각예술, 춤, 연극 등을 망라한 다양한 장르와 주제, 콘셉트 아래 동시대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들의 색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올해 싱크 넥스트에서는 전방위 음악가 장영규와 박민희의 공동연출로 원로 국극배우 조영숙을 재조명하는 작품 <조 도깨비 영숙>을 선보였다. <조 도깨비 영숙>은 원작인 여성국극 ‘선화공주’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영상과 배우의 무대 실연을 절묘하게 교차구성, 깔끔하고 세련된 연출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과거와 현재, 극의 서사와 배우(조영숙 명인에 대한 헌사), 영상과 무대라는 크고 작은 간극을 균형감있게 오가며 매우 동시대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매우 동시대적으로 빚어냈다.

 

잠시 과거로 거슬러 가보면,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정은영 작가는 당시 1950년대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만 시대의 산물이 된 여성국극을 소환했다. 문화적 동시대성, 성별의 규범, 전통의 형성과 배제 등 그간 공연예술계가 다루지 않았던 여성국극을 둘러싼 광범위한 사회적, 문화적 담론과 이면을 수면 위로 올려 놓았는데, 이 작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인물이 바로 조영숙 명인과 정가 기반의 전방위 작업자 박민희였다. 정은영 작가는 <유예극장_Deferral Theatre>이라는 작품을 통해 사라지는 전통에 대한 상반된 입장, 그리고 유예된 전통과 유예되고 보류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조 도깨비 영숙>에서 다시 만난 조영숙 명인과 연출자 박민희의 작업이 어떻게 발화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전통 가곡에 천착하여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와 다양한 현대예술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박민희는 ‘전통과 동시대성’이라는 자신의 오랜 화두를 이 작품에 투영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국가의 호명을 받지 못한 ‘여성국극’과 국가의 호명을 받은 ‘가곡’의 운명이 결국 다르지 않기에 전통이 된 원로 명인에 대한 헌사는 전통이 될 미래의 것들에 대한 PRE-헌사는 아니었을까.

3) 여성국극 <선화공주>는 백제 사람 서동과 신라의 선화공주 이야기를 담은 '서동요'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953년에 부산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당시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 앨범 [lull~유영] Modular Seoul(모듈라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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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음악 기반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모듈라서울’은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며 독자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팀이다. 이들은 불교철학을 공부하던 중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의 공연 제안을 받았다. 인묵스님을 만나 본격적으로 범패와 불교철학을 탐구하였고 2023년 여름, [lull~유영]을 무대에 올린 이후 올해 5월에 동명의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범패를 추상적인 개념, 음향적 요소로 활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범패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소리 이면의 철학적 사유와 범패의 본질을 담으려 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범패와의 정서적, 음악적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음향과 음악을 구현하며 전통/전통음악에 대한 태도와 접근방식을 견지하였다.

일곱 개 트랙을 관통하는 앨범의 메시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배려와 위로’이다. 불교 의식에서 연주되는 ‘불전사물(佛殿四物/범종, 법고, 목어, 운판)'은 지옥, 땅, 물, 하늘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을 의미하며 사물의 소리로서 세상 만물을 보살피는데, 이러한 불교의 자비(慈悲) 정신, 전통음악이 지닌 포용력, 전자음악의 개방성이 만나 더욱 깊고 광활한 심연의 소리로 발현되었다. 모듈라서울의 앨범 [lull~유영]은, 자연에서 태어난 음악이 자연과 무관해 보이는 가장 동시대적인 전자 사운드를 만나 서로에게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부여해 준 좋은 사례라 생각된다.

 

<조 도깨비 영숙>와 [lull~유영]은 작업의 지향성과 방법은 달랐으나 전통예술 원형에 대한 이해와 깊은 존중을 바탕으로 당위적 사고에서 탈피,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는 동시대 작품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이 두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의 비동시적 동시성. 동시대성의 획득은, 유행과 시대감각, 대중적 선호의 부응 이전에 비동시성을 인정하는 것, 다름과 차이, 그 간극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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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c Next 24 <조 도깨비 영숙> 출처. 세종문화회관

음반 [lull~유영] 출처. 모듈라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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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연주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듀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관찰하기 좋아하며 소리의 시공간성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들려오는 것들>, <부르는 소리: 범패>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제작하였으며 한국PD대상 실험정신상,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이달의 PD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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