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iew
2024/25.WINTER
꿈 kkum x WhatWhy Art
공연 <자유즉흥>
글. 김예원
우리가 공연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날도 역시 부푼 기대를 안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내부는 어두웠고, 바닥에는 관객들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방석들이 놓여 있었으며, 공간 곳곳에 놓인 작은 촛불들이 자리로 안내했다. 공연장 내부의 분위기가 현실 세계와는 조금 분리된 듯한 감각을 형성하며, 개인의 깊은 무의식 속으로 침잠할 수 있도록 의도되었음을 느꼈다. 집에서 음반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음악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음악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장을 향하는 길, 시작 전의 기다림, 낯선 공간과 사람들 - 이 모든 감각이 빚어내는 생경한 자극 또한 공연의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연은 단순한 감상의 순간을 넘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실험적 사운드의 성소 벌트vurt.는 서울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신(Scene)에서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것만으로도 이미 유의미한 공간이다. 하지만 단순한 클럽 이상의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특히, ‘꿈’이라는 라이브 기획 공연을 지속해서 선보이는 이유는 전형적인 DJ 셋에서 벗어나 즉흥적이고 비정형적인 사운드 실험을 시도하기 위해서다.
‘꿈’은 청취와 몰입의 경험을 제공하며 클럽이 단순한 오락 공간이 아닌 감각을 탐구하는 장이 되도록 유도한다. 테크노가 본래 가지는 트랜스 적 몰입감을 다른 방식으로 확장하여 비트 중심 음악보다도 음향 자체에 대한 탐구로 연결 짓는다.

vurt.와 왓와이 아트의 만남은 이러한 공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단순히 ‘듣는’ 공연을 넘어 공간 속에서 경험하는 즉흥적인 퍼포먼스로 작동했다. 이러한 연계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vurt.가 지속해서 탐구해 온 음악적 철학과 자유 즉흥 음악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청중을 무의식과 감각의 흐름 속으로 깊숙이 이끄는 것 - 이것이 vurt.라는 장소가 이번 기획에서 수행한 역할이었다.
vurt.와 왓와이 아트의 만남은 이러한 공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단순히 ‘듣는’ 공연을 넘어 공간 속에서 경험하는 즉흥적인 퍼포먼스로 작동했다. 이러한 연계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vurt.가 지속해서 탐구해 온 음악적 철학과 자유 즉흥 음악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청중을 무의식과 감각의 흐름 속으로 깊숙이 이끄는 것 - 이것이 vurt.라는 장소가 이번 기획에서 수행한 역할이었다.
4개의 대화
<자유즉흥>이라는 타이틀 아래, 한국적 현대음악 앙상블 ‘왓와이 아트’와 서울의 전자음악가들 Unjin, Djilogue, Siot, Hosoo가 짝을 이루어 총 네 개의 협연을 선보였다. 여기에 비주얼 아티스트 Nahsol과 Pano의 라이브 영상이 더해져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어우러진 다층적 공연이 완성되었다.
국악기의 어쿠스틱한 물성과 전자음악의 유기적인 사운드가 결합하면서 예상할 수 없는 순간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앙상블 연주자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자음악의 질감과 밀도에 반응하며 불규칙한 흐름을 만들어냈고, 전자음악가들은 실시간으로 사운드를 재구성하고 변형하며 연주자들과 상호작용했다. 즉흥이라는 요소 속에서도 전자음악가들의 사운드 디자인과 연주의 흐름은 정교하게 조직되었으며, 단순한 소리 실험을 넘어선 음악적 대화가 형성되었다.
자유 즉흥은 단순히 예측 불가능한 소리의 나열이 아니라 연주자들 사이의 긴장과 균형 속에서 탄생한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음악가가 만나 각자의 언어를 존중하면서도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대화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자유 즉흥의 진정한 매력이 드러난다.
나는 즉흥에서 이러한 긴장감과 상호작용에 귀 기울이게 된다. 즉흥이 흥미로워지는 순간은, 한쪽이 단순히 반응하는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소리가 서로를 밀고 당기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때다. 이번 공연에서 네 개의 협연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즉흥을 풀어냈지만, 내가 가장 몰입했던 순간은 두 연주자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소리를 제안하며 그 안에서 긴장과 균형을 창출해 가는 순간이었다.

유홍의 대금에서 발현된 어쿠스틱 소리와 그 소리를 전자적으로 받아 변형하고 송출하는 Unjin의 소리가 연주장 안에 공존했다. 대금의 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과 전자음악에서 만들어지는 진동은 성격이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대금의 떨림은 마치 내면 깊숙한 곳을 자극하며 감정적인 호소를 만들어내지만, Unjin의 소리는 이 떨림을 차분하게 정제하여 이성적인 방식으로 전달하였다. 두 연주자의 소리는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며 독특한 음악적 균형을 형성했다.
이와 유사하게, Hosoo의 깊고 공간감 있는 사운드스케이프 위에 가야금 연주자 이화영의 현소리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서로를 보완하면서도 독립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연주의 초반부는 고요한 듯 시작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가야금의 소리가 더욱 역동적으로 전개되었고, 마치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4개의 협연 중 가장 테크노 장르의 본질을 떠올리게 한 연주는 타악기 연주자 김웅식과 전자음악가 Siot의 연주였다. 김웅식의 북소리는 마치 테크노 음악의 저음역대 비트를 연상시키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여기에 Siot의 세밀한 노이즈가 반복적으로 더해지며 두 연주자는 반복성과 어긋남을 탐구하는 듯했다.
특정 연주 상황에서는 한쪽이 다소 보조적이고 반응적인 역할에 머물며 상호작용의 긴장감이 약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국악기 연주자는 전자음악의 리듬과 질감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전자음악가가 자신의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종속적인 흐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지점에서 자유 즉흥의 대등한 대화에서 나오는 역동성을 더 깊이 고민할 필요성을 환기했다.
전자음악가 Djilogue와 해금 연주자 강지은의 협연은 이러한 대화의 이상적인 구현을 보여줬다. 두 연주자는 대등한 위치에서 사운드를 펼치며 서로를 견인하고 확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연주자의 소리는 서로 잘 구분되지 않고 하나의 새로운 음악으로 전달되었으며, 이는 두 연주자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섬세하고 긴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소리의 독립성과 음악의 확장
이번 공연의 제목이 <자유즉흥>이었던 만큼, 나는 음악적 즉흥보다도 음향적 즉흥의 요소에 더 중점을 두고 청취했다. 자유 즉흥은 전통적인 음악 구성 요소인 멜로디, 화성, 리듬의 틀을 벗어나 소리 자체를 음악의 본질로 삼는 실험적 접근으로, 이러한 음향적 즉흥의 특징을 더욱 확장한다.
20세기 작곡가 에드거 바레즈(Edgar Varèse)가 소리를 시간 과 공간 속에서 배치하는 재료로 간주하고 소리의 물리적 질감과 음향적 관계에 주목하여 ‘조직된 소리’라는 개념을 제시했던 것처럼, 자유 즉흥은 이 개념을 실천적으로 구현한다. 바레즈의 개념은 소리를 단순한 음악적 도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보며 그것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문맥 속에서 창조해 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현대음악 앙상블과 전자음악가들의 만남처럼,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가들이 함께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 즉흥의 특징을 더 깊이 숙고한다면 단순히 장르 간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연주를 통해 서로의 음악적 언어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여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미지 제공
왓와이 아트

글. 김예원
서울에 위치한 책과 음반 판매점 <로프 에디션스>를 운영하며 실험음악 공연 및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ropeedi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