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sue 06
2025.WINTER
클라렌
글. 클라렌
1. ‘한국적인 것’을 비평해 내기
‘한국음악’이란 무엇인가? 이는 얼핏 보기에 간단한 것 같지만 하나의 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난해한 질문이다. 음악이라는 갈래는 구체적이지만 ‘한국’이라는 부분이 그 정의를 어렵게 한다. 한국 전통에 기반한 ‘국악’이라는 갈래는 그 대표성을 어느 정도 가지지만 이것만으로 한국음악의 외연을 포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 한국인에 의해 창작된 음악, 한국 자본에 의해 생산된 음악 등 역시 모두 ‘한국음악’의 일환일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점은 한국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한국’인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근대 초기부터 존재했고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지만,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과연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시기인 1980년대의 몇몇 비평을 살펴볼 것이다. 그 출전은 『공간』, 『마당』, 『객석』, 『마드모아젤』, 『음악동아』로, 그 외연이 각양각색이다. 『공간』은 1966년 창간된 건축 잡지이지만 음악을 포함하는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 논의가 등장한 바 있는 비평지이기도 했다. 『마당』은 언론인 출신의 편집진이 주도하여 1981년 창간한 종합적 문화지로 역시 다종다양한 문화 담론이 실린 매체였다. 『객석』은 1984년 창간되었으며 음악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는 종합적 예술지이다. 『마드모아젤』은 1987년 창간된 여성지로 문학, 출판, 음악, 연극, 민속, 미술, 영화 등을 다루는 문화비평이 지속해서 게재되었다. 1984년 창간된 『음악동아』는 여기에 언급된 잡지들에 비해 가장 전형적인 ‘음악지’라고 할 수 있으나 국악에 큰 비중을 할애하는 편집 기조를 가졌다.
음악적 측면에서 한국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한국음악론’이 구체적이면서 본격적으로 담론화되었던 시기는 1980년대였다. 1980년대에는 연주나 작곡 이외에 미학과 철학을 포괄하는 이론을 담당하는 학자들이 다수 등장하였다. 이와 동시에 잡지 매체의 확장으로 인해 비평의 양적 증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바로 음악 담론의 전반적인 자장이 크게 확대되었던 시기였으며 이에 따라 한국성에 대한 논의 역시 다채로운 지면에서 발견되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잡지 중 『공간』 이외에는 모두 1980년대에 창간되었다는 것은 특기할 지점이다. ‘한국적인 것’의 도출에 대해 당대 담론은 대체로 내부와 외부의 절대적 구분의 시도, 순수한 기원의 추적, 규범적 정체성의 재구성이라는 비평의식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다. 이를 검토해 보는 일은 2020년대 중반인 지금의 맥락에서도 유의미할 뿐 아니라 흥미로운 지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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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적인 것’과 ‘비한국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상상하는 토대로 가장 중요하게 지목되는 것은 분명 ‘전통’이라는 개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음악사뿐 아니라 담론사 자체에서도 중요한 인물인 나운영이 1959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글 「음악이 보다 한국적이려면」은 주목할 만한 논의를 제출한다. 나운영(1959)은 음악에서 “한국적” 성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왜색과 서양색을 일소”해야 하며, 이때 비로소 민족성, 시대성, 진정성이 결집한 한국성을 도출할 수 있다고 논한다. 여기에서 나운영이 제시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왜색과 양색 음계를 최대한 피하라는 것이다. 둘째, 국악 중 가장 민족적이라 할 만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셋째, 외국 음악 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섭취”하라는 것이다. 이 규칙들에 기반한 작법을 잘 지킬 때 최종적으로는 진정한 한국적 음악, 한국적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나운영의 비평은 한국적 ‘전통’만으로는 한국음악에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을 제기하고 있다.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나간 전통과 도래할 전통이 연합해야 함을 논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현대는 전통과 배타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전통의 기원으로 자리매김한다.
내부와 외부의 완전한 구분은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문화적 맥락에서 이는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황병기(1985)가 전통의 계승, 현대화, 대중화가 모두 긴밀하게 연관된다는 점을 지적했듯이, 정치적 진자 운동에 대한 포착과 해석은 여기에 필수적으로 개입한다. 앞서 언급한 나운영의 비평이 순수성의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단순한 원리주의적 환원론으로 빠지지 않으려 하는 것 역시 이와 관련될 것이다. 이강숙은 『공간』에 1979년 게재한 비평 「한국 가곡: 그 진과 준」에서 ‘한국적인 것’과 ‘비한국적인 것’의 구분에 대한 하나의 논의를 제시한다. 그는 당시 ‘한국 가곡’으로 연주되는 곡들이 사실 ‘한국노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중은 그것을 한국노래로 알고 속는다”라고 말한다. 이때 그 근거는 선율(음계)을 위시한 음악적 속성에 있어 서양음악의 어법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에 의한다면 가사만 한국어를 사용하는 경우 사실상 “서양 예술가곡의 아류”이다. 비평은 가곡의 특성상 가사에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역시 중요하겠으나, 예를 들어 평조나 계면조 기반의 선법에 기반이 되어야 진정한 한국 가곡으로 칭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양옥과 한옥, 목조건물과 석조건물”을 구별하듯, 가사만을 한국어로 하고 분석해 보면 “서양적인 것”에 기반하는 가곡은 “준 한국 가곡”이고, 모든 요소를 한국적 토대에 기반하는 경우를 “진 한국 가곡”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이강숙은 논한다(이강숙, 1979).
이강숙의 논리를 확장하면서도 사회적인 측면을 함께 포괄하려는 이건용의 한국음악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1984년 『마당』에 게재한 비평에서 그는 한국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을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간성을 통하여 구분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먼저 과거를 중시하는 경우는 전통음악을 한국음악과 동일시하는 견해다. 이건용에 의하면 이 관점은 지금 한국의 음악은 “외국 음악 등의 침입에 따라” 그 의의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본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는 전통음악의 계승과 발전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현재를 중시하는 경우는 곧 한국 사회의 모든 음악이 한국음악이라고 여기는 태도다. 이 입장에서 전통음악은 한국음악에 종속되는 하위범주로 간주하며, “수입된 양악” 역시 한국음악을 이루는 구성 요소로 간주한다고 이건용은 강조한다. 다만 “도감식 정의”의 입장은 미래 시각을 견지하고 있지만 다양한 음악적 자원을 무분별하게 취합할 뿐이지, 결국에는 “오늘의 음악을 보는 시각의 연장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음악에 한국음악의 상을 근거 짓는 관점은 앞 두 항에 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언급된다. 논의는 이 접근이 지금의 구체성은 부족하지만,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논점을 구축하는 데에 가장 유효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음악을 과거에 근거해 설정하는 “작품 없는 전통”과 현재에 근거해 설정하는 “전통 없는 작품” 양측이 갖는 장단점을 취합하고 핵심적 쟁점을 주도할 수 있는 시각은 미래에 근거하는 태도라는 것이다(이건용,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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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의 몇몇 비평들은 한국적인 것과 비한국적인 것을 더욱 확실히 나누기도 한다. 다만 넓은 측면에서는 이강숙과 이건용의 비평 이론적 규격과 맞닿아 있다. 1988년 주성혜(1988)의 비평은 국악기가 동원된 구창모의 <외로워 외로워> 공연에 대해서는 “전통 음악적 재해석”이 없고, “상업성의 냄새”가 난다고 평한다. 반면 국악가요로 소개된 강호중의 <꽃분네야>는 “다소 안정된 분위기”를 풍긴다고 평한다. 즉, 전자는 ‘준 한국성’의 음악이고 후자는 ‘진 한국성’과 밀접한 음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주성혜는 이러한 국악 및 전통 음악적 시도에 있어 “음악어법의 본질적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진회숙은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전자 및 전기악기와 국악기의 합주를 시도한 슬기둥의 공연이 “국악 비슷한 것이었지 국악은 아니었다”라고 평한다(진회숙, 1989a). 또한 다른 비평에서 김덕수 패 사물놀이의 창단 10주년 공연에서 대중음악팀과 협연을 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 민중의 소리”가 생산적, 상업적, 소비적 소리로서의 “상업주의 음악”에 “철저하게 유린”당한 무대였다고 언급한다(진회숙, 1989b). 여기에서 진회숙은 “팔의 힘이 그대로 악기 소리로 연결되는 자연적인 소리”와 “앰프에 의해 얼마든지 음향 조작이 가능한 기계적인 소리”라는 대립 구도를 설정한다. 이에 의한다면 전자는 진정한 한국성에 가까운 민중의 소리이고 후자는 진정성과 거리가 먼 재현 가치의 소리이다. “전통음악의 현대적 수용”이라는 논제에서 주도적인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은 대중음악/서양음악이 아닌 전통음악이어야 한다는 것이 진회숙의 논지이다.
3. 차이의 발견, 대립의 중첩, 음색의 규범
앞의 논자들이 ‘전통음악’ 혹은 ‘국악’을 ‘한국음악’과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음악 없는 한국음악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느슨하게 공유 및 합의된다. 즉, 전통음악은 ‘한국적인 것’으로서 순수한 내부의 성질을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한국성의 투영과 발현에 있어 핵심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때 ‘한국’이라는 음악적 정체성은 음계나 어법이라는 구조적 요소에 의해 확실히 보증된다. 연주나 연행 등 시간 현상의 항은 부차적이거나 주변적 요소로 격하된다. 또한 구조적 체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통 악기의 대입은 본질에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다만 당시 비평 중 구조적 가치에 우선성을 부여하지 않는 논의도 발견된다. 한명희(1988)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악기 음색의 문제로 바라본다. 그에게 있어 동양음악은 “식물성 음색”의, 서양음악은 “금속성의 음색”의 음악이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음색 적 분위기의 차이”의 연원은 “식물성 재질의 악기”와 “금속성 재질의 악기”에 있으며, 이에 이어서 “감성적 문화구조” 대 “논리적 문화 토양,” 자연에 대한 “귀의적 순응의 자세” 대 “도전적 극복의 자세”로 이어진다고 논한다.
한명희는 구조가 아닌 현상에 주목하여 한국성을 파악하려 했으나 상호 간에 간섭 없는 내부 대 외부의 구분 의식을 타파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음색’을 전면에 세운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음색은 한명희의 비평에서 사용된 것과 같이 일반적으로 특정한 소리가 갖는 구분적 특성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협의적 정의로 음색을 완전히 정의할 수는 없다. 음색에는 이미 발성체가 발생시키는 소리와, 이 소리에 대한 인지를 함께 상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음색은 내부와 외부의 중첩으로부터 출발하는 개념이기에 곧 소리 현상과 그 문화적 매개의 원리를 함의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음색은 실시간 음 현상이나 악기와 같은 소리 발생 수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용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음색은 구조와 명백하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음색에는 구조가 존재하며, 또한 합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구조의 음색’ 역시 성립 가능하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논의되던 음계에 기반하는 ‘왜색’ 개념은 바로 여기에 해당했다.
역사, 국적, 장르, 그리고 ‘비 음악적’이라고 여겨지는 것 모두에게서도 ‘음색’은 도출 가능하다. 이는 바로 음색이 특수화나 일반화와 같이 배타적 이분법으로서 대립 관계 논리의 재생산에 멈추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성과 특수성 관계에 기인하는, 무결하고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나와 너, 내부 대 외부, 한국 대 비한국과 같은 대립 관계에는 사실상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항상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문화적 맥락이라는 원리가 작용하기에 이러한 대립 관계에서는 항상 “해결되지 않는 간극, 공백, 중첩” 등의 예외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립 관계라는 하나의 촉발 이후, 논리의 절대적 바깥일 것만 같은 이 예외성이 갖는 대체 불가능성과, 이에 더해 그 대체 불가능성의 반복 가능성까지 함께 포괄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색인 것이다(신정환, 2024: 49).
1980년대 담론은 분명 ‘한국 음색’을 도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발견된 차이의 문제는 대체로 순수하게 배타적인 내부로서의 ‘한국’이나 ‘전통’에 최상위 윤리이자 음색 적 규범의 위상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돌출되는 문제는 바로 차이가, 대립이, 중첩되는 지점이다. 한국과 비한국의 대립을 절대화할 경우, ‘한국 내의 비한국성’과 ‘비한국 내의 한국성’이라는 중첩의 영역이 즉시 등장한다. 전통과 현대의 대립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 여기에서 재생산되어 나타나는 ‘새로운 전통’과, 앞으로 도래할 ‘오래된 현대’가 바로 그것이다. 대립 관계의 설정, 양자의 계열화, 유동성 없는 무결한 규범의 구축은 토대가 되는 공리의 변조 가능성에 의해 손쉽게 무너진다. 이 때문에 음색을 고찰하는 일은 유의미하다.
음색은 지나감과 도래함을 포괄한다. 이는 기존의 ‘음색’에 대한 재사유임과 동시에 음악의 본질을 다시 파악하는 일이 된다. 여기에서 더 이상의 논의를 진행하거나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음색’을 구성하는 비평 이론적 “성좌”의 한 측면을 바라보았다는 소기의 도달을 마주할 수 있을 뿐이다(황호덕, 2008). 다시 강조하고 싶다. 음색은 지나간 것임과 동시에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의 음색’은 2025년이라는 지금, 지나간 것으로 멈추지 않으며 마땅히 도래한 것이기도 하다. 지나간, 도래할, 그 조각들의 공명과 진동이 바로 ‘한국 음색’과 ‘한국음악’을 계속해서 구성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사진 제공. 신정환
1. 객석 1987. 1월호 표지
2. 음악동아 1985. 1월호 표지
3. 클래식 레코드 총목록 음악동아 별책부록 86년판. 1986. 1월호부록
4. 월간음악 1979. 4월호 표지
5. 월간음악 1979. 4월호 독자투고란
참고문헌
나운영. 「음악이 보다 한국적이려면: 먼저 왜색과 서양색을 일소해야한다」. 『조선일보』 1959년 9월 27일. 4.
신정환. 「1980-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비평 담론 연구: 음색과 장르 문제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4.
이강숙. 「한국 가곡: 그 진과 준」. 『공간』 1979년 1월호. 93-94.
이건용. 「작품 없는 전통, 전통 없는 작품」. 『마당』 1984년 3월호. 220-231.
주성혜. 「’87 KBS 송년 대음악회: 팝과 국악의 만남?」. 『마드모아젤』 1988년 1월호. 413.
진회숙. 「국악실내악단 ‘슬기둥’ 연주회」. 『객석』 1989a년 12월호. 271.
진회숙. 「사물놀이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 민중의 소리가 상업주의 음악에 유린당한 무대/만남의 필연성과 미학적 근거 전제되야」. 『음악동아』 1989b년 1월호. 240-241.
한명희. 「식물성 음색과 금속성의 음색」. 『객석』 1988년 4월호. 72-73.
황병기. 「전통을 이으면서 현대화돼야 대중화 성립」. 『객석』 1985년 5월호. 72-74.
황호덕. 「문학이라는 ‘이름’: 서문을 대신하여」. 『프랑켄 마르크스: 한국 현대비평의 성좌들』. 2008. 5-17.

글. 신정환
문화학박사. 성균관대학교 강사 및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 비평 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외 연구로 「대중음악 가창연주론 연구: 스타일 반영주의를 넘어서」(2023), 「디스포지티프와 이용자 주체성: 게임과 메타버스를 중심으로」(1저자, 2022), 「대중음악의 구조와 가치에 관한 연구: 단독성으로서의 지향」(2020)이 있다.